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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당시에도 의병이 있었습니다. 특히 호남 지역의 의병이 두드러졌습니다. 청의 침입 소식이 전해지자 옥과현감 이흥발·대동찰방 이기발·순창현감 최온·전한림 양만용·전찰방 유즙 등이 자진하여 의병 모집에 앞장섰습니다. 인조 14년(1636) 12월 19일 포위중인 남한산성에서 위급을 알리며 의병을 규합하고 군량과 무기를 수집하여 청의 침략군을 무찌르라는 교서가 전달되자 의병 봉기의 움직임은 더욱 박차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의병을 이끌고 남한 산성으로 향했으나 인조의 항복으로 제대로된 싸움을 하지 못하고 해산되었습니다.
정묘호란 당시 일으킨 최효일은 병자호란때도 홀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강서에서 사는 만호 정지성은 촌가에 있다가 난을 당하자 보보산성(保寶山城)에 들어가 적군을 물리치고 백성을 구했습니다. 황해도에서도 김응남이 멸악산을 근거로 활약했습니다. 그리고 경상도에서 김식회가 의병을 일으켜 퇴각하는 경상감사 심연의 부대와 함께 잠행하며 작전을 전개했습니다. 또 그는 인조가 남한산성에 있을 때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가 50여명의 살해했습니다.
다만 병자호란은 1636년 일어난 그해에 강화함으로써 단기간이기 때문에 임진왜란에 비해 활약 기간이 짧아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