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생소한 서양의술과 양약에 대한 인식이 급작스럽게 높아진 계기는 1884년 10월 17일에 우정국 낙성연에서 발단된 이른바 갑신정변이 도화선이 되었다. 자객의 습격으로 인상을 입은 금위대장 민영익을 미국 공사관 소속의 선교사인 알렌(Allen,H.N.)이 치료하여 성공적으로 생명을 구해낸 것이 계기가 되어, 갑신정변은 서양의술을 전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듬해인 1885년에 정부는 한성북부의 재동에 왕립병원인 광혜원을 설치하여 알렌으로 하여금 원장이 되어 운영하게 하고, 약품과 의료기계는 국비로 미국에서 구입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한·미 양국간의 공적인 의약품거래의 효시가 된다(광혜원은 얼마 안 가서 제중원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이보다 몇 해 앞선 1897년에 지석영이 부산에 있는 일본 제생병원에 가서 2개월간 우두종법을 실습받고, 그 해 12월에 충주군 덕산면에서 40여 명에게 종두를 실시한 것이 우리 나라에서 공적으로 종두를 실시한 최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약용이 1835년에 중국에서 전래된 우두종법서를 입수하여 그 방법을 배워서 종두를 실험하였으나 비공식적인 것에 그치고 널리 유포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석영보다 빨랐으나 우두종법 실시와 우두묘(牛痘苗) 제조의 시초라고 내세우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