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9년 12. 12 군사 쿠데타의 주역은 5.17을 선포하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고 권력을 장악하였습니다. 그러나 1993년 7월 19일 군사정변 10년이 지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이 쿠데타의 주역 34명을 검찰에 고소하였으나 기소유예 처분 당하였습니다. 이후 반발 여론이 거세지자 16명이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전두환, 노태우, 황영시, 허화평, 이학봉, 이희성, 주영복, 정호용, 유학성, 허삼수, 최세창, 차규헌, 장세동, 박종규, 신윤희, 박준병 총 16명이었습니다.
전두환은 95년 구속되어 1심에서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나 결국 15대 대통령 선거 이틀 후인 1997년 12월 20일 김영삼 정부에 의해 사면 복권 되었습니다.
노태우는 1심에서 22년 6개월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 17년으로감형되었으며, 결국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15대 대통령 선거 이틀 후인 12월 20일 김영삼 정부에 의해 사면복권되었습니다.
그리고 항소심 재판부는 황영시, 허화평, 이학봉에게 반란 중요임무 종사죄 등을 적용해 각각 징역 8년을, 그리고 정호용, 이희성, 주영복에게는 징역 7년을 각각 선고했습니다. 또 허삼수, 유학성에게는 징역 6년, 최세창에게는 징역 5년 그리고 차규헌, 장세동, 신윤희, 박종규에게는 각각 징역 3년6월이 선고되는 등 대부분 1심보다 낮은 형량이 선고됐습니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박준병 피고인에 대해서는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15명 중 14명이 감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감형된 형량조차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1997년 12월 22일 김영삼 정부는 특별사면을 통해 유죄를 받은 15명 전원 사면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