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말선초에는 고려 말에 안향과 백이정에 의해 들여온 성리학이 유행하여 신진 사대부를 형성하였습니다. 목은 이색이 주도적인 인물이었고 그 휘하에는 고려왕실을 그대로 두고 개혁을 하자는 절의파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역성혁명파로 나뉘게 됩니다. 절의파의 대표적 인물이 포은 정몽주이며 역성혁명파에는 삼봉 정도전과 하륜 등이 있었습니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조선 건국 전후로 모두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였는데 하륜은 권력에 취해 부정부패를 했음에도 이방원은 하륜을 끝까지 신임하였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왕위를 차지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2번이나 공신으로 등용되는 등 처세술이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말년에 두 번의 실수가 있었으나 태종은 가벼이 넘기고 말았습니다. 이에 세종은 아버지의 그릇이 커 하륜을 다루고 살려두었지 나 같았으면 진즉에 박살내버렸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