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가 원나라에서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고려 출신인 기황후가 원나라에 끌려갔는데도 불구하고 원나라에서 황후라는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혜종은 고려인 공녀 출신 기씨를 새로운 제1황후로 삼으려 하지만 당시 실권자였던 바얀이 몽골족이 아닌 여성을 제1황후로 삼을수 없다고 반대하여 바얀 후투그를 새로운 제1황후로 삼았는데 사실 바얀이 반대한데는 기씨가 황자를 낳지 못하는 것도 이유였을 것으로 1338년 기씨는 혜종의 아들 아유시리다라를 출산하고 바얀이 실각하자 혜종의 국사 사라판이 기씨를 제 2황후로 책봉함을 정하여 제2황후가 됩니다.
황후가 된 기씨는 흥성궁에 거처하고 아들을 낳고 혜종이 총애하기는 했지만 정치적 뒷받침이 없어 고민하던 중 마침 혜종이 태황태후 부다시리를 폐위하고 추방했는데 당시 부다시리는 휘정원을 관리하고있었습니다. 부다시리를 추방 후 혜종은 휘정원의 관리를 기황후에게 맡기는데 기황후는 이를 기회 삼아 측근인 박부카와 고용보를 이용해 원나라의 실권을 장악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황후는 혜종의 총애를 배경으로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였습니다. 그녀는 재정과 번위(番衛)를 맡아보는 황후 직속 기관인 휘정원(徽政院)을 자정원(資政院)으로 개편하여 고용보를 초대 자정원사(資政院使)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1353년 자신의 아들인 아유르시리다라[愛猷識里達獵]를 황태자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으며, 동향(同鄕) 출신의 환관 박불화(朴不花)를 군사 책임자인 추밀원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로 삼아 군사권도 장악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사실상 당시 원나라의 최고 권력자였던 '타환(원 순제)'의 총애를 입어 황후까지 오를 수 있었고, 아들(아유시리다야)이 원 순제 뒤를 이어 황제가 됨으로써 실권까지 장악할 수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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