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님이 1948년 대통령직 출마를 거부한 것은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었지만 38도 선을 경계로 분단되었습니다. 당시 김구 선생은 통일정부 수립 운동을 위해 노력했으나 미, 소 냉전이 강화되면서 불가능해졋습니다. 특히 김구 선생은 1948년 2월 유엔소총회에서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결정되자 북한의 김일성에게 남북협상을 제안하여 4월 남북협상을 추진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김구 선생은 5.10총선거에 출마하지 않았으며, 총선으로 구성된 제헌의회에서 일부 의원들에 의해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이번 정부에서는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라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그 이유로 5월 31일 대통령 간접 선거에서 김구는 13표만 얻었습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입장과 불참 의사를 반영한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