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대왕 시기 1443년 훈민정음 창제에 대다수의 조선 관료들은 오랑캐 문자라고 반대했습니다.
특히 집현전 학자인 최만리는 중국 중심의 한자 문명 질서를 위협한다고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최만리의 언급 처럼 당시 지배적인 관료들은 훈민정음 창제는 성리학적인 중화 질서를 위배하는 불충한 행위라는 것이며, 오랑캐 취급을 당하는 야만적인 행위라고 인식했던 것입니다. 또한 한자를 우월한 문자로 여겼으며, 문자는 양반 지식인의 전유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은 1446년 반포에 성공하여 조선 시식층의 한자 숭배, 중국 중심 사대 사상을 벽을 허물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