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초부터 궁녀의 상종문제로 태종과 불화를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태종과의 불화는 성품의 강한(强悍: 마음이나 성질이 굳세고 사나움)과 빈어(嬪御: 빈들이 왕을 모심) 문제로 인한 갈등에 그치지 않았다. 1407년(태종 7) 7월에 발발한 민무구(閔無咎) 형제의 옥사주1를 계기로 더욱 심각해졌다. 민무구 형제는 이미 1402년(태종 2)에 왕이 창종(瘡腫: 헌데가 생겨 부은 것)으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시녀를 끼고 왕의 병세를 염탐하며 은근히 집권 기회를 노렸다는 의심을 받았다. 정비가 이에 관여한 것 같지는 않으며, 이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민무구 형제가 불충죄로 몰리는 한 원인이 된 것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