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초기의 왕위 계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백제의 비류와 온조가 친형제가 아니듯이, 고구려의 주몽과 유리도 부자지간이 아닙니다.
혹자는 유리가 주몽을 찾아와 부러진 칼을 신표로 내밀어 이를 맞추자 피가 나왔다는 설화를 토대로 정변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견해로는 오히려 이들이 한 집단에서 나온 같은 혈통임을 드러낸다고 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 견해 모두 주몽과 유리를 부자지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겠지요.
한편 «삼국유사» 왕력에 따르면 고구려 제2대왕 유리는 성씨가 "해"로 나옵니다. 반면 동명왕 주몽은 "고"씨라고 언급되죠.
그 이유는 고구려 초기 역사가 소수림왕 시기에 편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고구려 왕의 계보를 정리하면서 계루부 고씨를 중심으로 편집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주몽은 고씨로 정리됐으나 그 뒤 왕들에는 해씨의 흔적이 암암리에 남아있게 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