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초대 군주로 묘호와 시호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시조 동명성왕으로 표기되어있으나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조에는 태조 중모왕 이라고 기록되어있어 태조 라는 묘호를 썼을 가능성도 있고, 태조대왕이라는 시호를 받은 인물이 따로 있다는 점도 동명성왕의 호칭인 태조가 묘호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줍니다.
보통 주몽과 동명을 동일시하지만 당대 기록인 702년 연남산 묘지명에서는 동명과 주몽을 별개의 인물로 보고있습니다.
고구려때까지는 동명과 주몽이 별개였으나 삼국시대가 끝난 훗날 고려시대 이후 시점에서 부여의 동명왕과 고구려의 추모왕이 동일시되는 과정에서 혼란이 생겼다는 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