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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빙
비비빙23.03.05

조선시대에 왕자의난은 어떤일들이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조선시대에 왕자의난은 어떤사건과 어떠한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왕자의난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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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0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위 계승으로 왕자의 난이 두 차례 일어났습니다.

    1차는 1398년(태조 7) 8월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왕자 간의 싸움이며, 일명 방원의 난 또는 무인정사, 정도전의 난이라고도 하지요.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자 간의 싸움인 동시에 정도전 일당과 방원 일당의 권력 싸움이기도 합니다.

    2차는 1400년(정종 2)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왕자 간의 싸움이며, 방간의 난 또는 박포의 난이라고도 합니다. 1차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세력구조는 이방원 일파에게 유리하게 바뀌어 이들이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태조의 넷째 아들 이방간 역시 왕위를 계승하려는 야심과 호기가 있었으나, 인격과 공훈 그리고 위세가 이방원에는 미치지 못했다고합니다. 그리하여 항상 시기심과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왕자의 난이 두 차례 벌어졌습니다.

    1차 왕자의 난: 1398년(태조 7) 8월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왕자 간의 싸움이며, 일명 방원(芳遠)의 난 또는 무인정사(戊寅定社), 정도전(鄭道傳)의 난이라고도 합니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자 간의 싸움인 동시에 정도전 일당과 방원 일당의 권력다툼이기도 합니다. 조선 건국 이후 국가의 통치질서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개국공신들의 지위가 급격히 상승하였다. 1393년(태조 2)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의 설립을 계기로 정도전을 주축으로 추진된 병권집중운동과 중앙집권화정책은 권력구조면에 큰 변화를 가져 왔다.

    개국공신 중 정도전의 지위가 크게 부상했지만, 여타의 훈신(勳臣)주1과 왕실세력 및 무장세력은 정치의 핵심에서 소외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398년 이후 이른바 진법훈련(陣法訓鍊)이 강화되자 왕자 · 종친, 기타 훈신 및 무장들이 가지고 있던 사병(私兵)에 대한 통수권이 해체될 단계에 이르러 양파의 대립은 극에 달하였다. 그 중에서도 방원과 정도전의 대립은 가장 첨예하였다.

    2차 왕자의 난: 1400년(정종 2)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왕자 간의 싸움이며, 일명 방간의 난 또는 박포(朴包)의 난이라고도 합니다. 제1차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세력구조는 이방원 일파에게 유리하게 바뀌어 이들이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사병을 거느린 동모 형제(同母兄弟)들이 여럿 있고, 그들의 세력도 적지 않았다. 이방원으로서도 이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어 항상 그들을 견제하였다. 태조의 넷째 아들 이방간 역시 왕위를 계승하려는 야심과 호기(豪氣)가 있었으나, 인격·공훈(功勳)·위세가 이방원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리하여 항상 시기심과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 2차례에 걸쳐 일어난 사건입니다.

    1398년(태조 7) 8월에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을 방원(芳遠:태종)의 난, 무인정사(戊寅靖社)의 난, 또는 정도전(鄭道傳)의 난이라 하고 1400년(정종 1월에 일어난 제2차 왕자의 난을 방간(芳幹)의 난 또는 박포(朴苞)의 난이라고도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제1차 왕자의 난>

    1392년(태조 1) 조선을 건국한 후

    만으로 6년이 지난 1398년(태조 7)

    음력 8월 26일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난이 일어났다.

    <제2차 왕자의 난>

    왕위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1400년(정종 2)에 일어난 왕자 간의 싸움이다.

    -출처: 우리역사넷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조는 무명 장수 시절에 고향에서 처로 맞이한 한씨에게서 이방우, 이방과, 이방의 , 이방간, 이방원, 이방연 6남을 두었고, 개경에서 새로운 처를 맞이하여 조선 개국의 막대한 도움을 받은 강씨에게서 이방번, 이방석 2남을 두었습니다.

    개국 후 태조는 강씨를 현비로 책봉해 수비로 삼고, 한씨에게 절비의 시호와 제릉 이라는 능호를 주어 추증왕비로 삼아 차비로 삼았으며 강씨 소생의 왕자 중 왕세자를 선별하여 막내아들인 방석을 왕세자로 책봉했습니다.

    이후 강씨가 사망하여 태조가 강씨를 왕후로 추봉하니, 비록 공식적으로 선포된것은 아니나 결과적으로 한씨는 후궁이 됩니다.

    또 태조는 개국 초 군권분장정책에 의해 왕자와 종친 밒 공신들이 소유한 사병을 혁파하고자 했으며 이에 반발한 한씨 소생 왕자들이 동복 형제들 및 종친들과 결탁해 태조 7년 10월 7일 쿠테타를 일으키는데 이것이 제 1차 왕자의 난 입니다.

    1차 왕자의 난으로 강씨 소생 왕세자 이방석과 무안군 이방번이 상해되고 한씨 소생 둘째 아들인 이방과가 왕세자로 등극했다가 한달 뒤 즉위하니 그가 정종이며 쿠테타의 주동자인 한씨의 다섯때 아들 이방원이 정종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은 난을 일으킨 이유가 장자승계의 법칙을 따르기 위함이었음을 명분으로 하여 동시에 이복이지만 친아우들을 살해한 패륜의 책임을 당장 벗어나기 위함이었고, 무장으로서는 탁월했지만 정치적 감각은 부족했던 형 정종에게서 자리를 양도받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으로 이후 정종을 압박하는 이방원의 행위에 여러 왕자들이 분개하다 그 중 이방원과 함께 비어있는 왕세자의 자리를 노리던 이방간이 정종 2년 음력1월에 난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2차 왕자의 난 입니다.

    이를 제압한 이방원은 2월25일 왕세자로 등극, 그 해 11월 28일 정종에게 왕위를 양위받아 즉위하여 태종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