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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달한파리매77
활달한파리매7723.01.09

농구에 역사가 궁금해요. 지금은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지만 어느나라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대중화가 되었는지 알려주세요

농구에 역사가 궁금해요. 지금은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지만 어느나라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대중화가 되었는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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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80 년대는 선수들만 농구를 좋아하고 별관심이 없었습니다.

    학생들이 키가 크고 난후부터 농구를 무척좋아하는것을 보았습다.


    농구는 1891년 미국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메사추세츠 스프링 필드에서 고안 되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농구는 1891년에 미국의 메사추세츠 스프링필드라는 곳에서 고안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국제 YMCA 트레이닝스쿨(현 스프링필드 칼리지)의 체육교사 였던 J. 네이미스라는 사람이 고안을 했다고 합니다. 스프링필드의 YMCA에서는 체육 시간에 주로 옥외에서 미식축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프링필드라는 곳은 겨울에는 눈이 많아 눈 때문에 운동장을 사용할 수 없어서 마땅히 할 만한 스포츠 프로그램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저 실내에서 하는 행진 연습이나 독일식 또는 스웨덴식의 딱딱한 맨손 체조 등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젊은이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런걸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학생들의 소리 없는 불평을 젊은 체육교사 네이 스미스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네이 스미스는 실내에서도 축구나 미식축구처럼 재미도 있고 운동상의 효과도 얻을 수 있는 스포츠가 없을까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운동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지금까지 운동장에서 하던 미식축구를 실내에서 그대로 하여 학생들의 불만을 덜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리저리 튀어 나가는 공 때문에 체육관의 유리창이 깨지고 벽이 망가지는 등 건물이 완전히 부서지고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습니다. 네이 스미스는 지금의 스포츠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스포츠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너무 과격한 스포츠는 실내에서 하기에 적당하지 않고 배트, 라켓, 스틱 등의 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스포츠를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을 사용하더 라도 큰 것이라야 하고, 거친 태클을 없애기 위해선 공을 가지고 달려서도 않되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면을 고려하면서 "골대를 높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골대를 높게 하면 슛하는 방법에 제약이 있으므로, 공을 힘으로 다루기보다는 정확하고 컨트롤에 역점을 두게 마련 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머릿속에 이런 구성을 생각한 네이스미스는 계속적인 개정, 보완 작업을 거쳐 새로운 스포츠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규칙13 항목을 적어 YMCA체육관의 게시판에 붙였습니다. 자신이 구상한 새로운 스포츠의 시험 경기를 앞두고 네이 스미스는 학생들에게 "이번 시도에서도 실패하면 더 이상 새로운 것을 개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이 "시험"은 대성공이었습니다. 1891년 12월 중순에 거행된 "사상 최초의 농구 경기"는 인원수에 제한이 없었습니다. 당시 학생수였던 18명을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에9명이 플레이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초창기에는 지금처럼 잘 튀기는 농구공이 없었기에 축구공을 대신 농구공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골대로 복숭아 바구니(Peach Basket)를 체육관의 양쪽 발코니에 10피트(305센티미터) 높이로 잡아매어 사용하였습니다. 이것(복숭아 바구니를 사용한 것) 때문에 바스켓볼 (Basketball)이라고 이름이 붙여져 지금까지 불리우고 있습니다. 동양의 일부 국가에서는 '상자'라는 뜻의 농(籠)자를 써서 "농구(籠球)"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우리나라 같은 곳입니다) 그리고 그때엔 그물을 안썼는지 슛이 들어갔을 때마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볼을 바구니에서 꺼내서 다시 농구 경기를 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 후 농구의 인기는 점점 커져가서 미국에서 대유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8년 후인 1899년에 프로농구 리그가 생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YMCA는 농구 보급에서 큰 역할을 차지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크리스마스가 되어. 학생들은 휴가를 보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자기 고향에 가서 학교에서 네이스미스에게 배운, 아직 이름도 없고 규칙도 제대로 기억할 수 없는 이 새로운 스포츠를 YMCA를 통해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탄생된 농구경기는 한 국가의 경기수준이 아닌 세계적인 구기경기로 인정되면서 1932년 제 10회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때 국제 농구연맹 (FIBA)이 창설되었다고 합니다. FIBA는 농구경기를 통할하면서 통일된 규칙을 제정하였고 그 후 올림픽에는 1936년 제 11회 베를린 대회 때 처음으로 남자농구 종목만이 올림픽에서 팀 게임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부터 40년 후인 1976년 제 21회 몬트리올 올림픽 대회부터는 여자농구 종목도 올림픽 경기로 채택되어 현재까지 실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1952년 헬싱키 올림픽, 1956년 멜버른 올림픽,1960년 로마올림픽, 1964년 동경 올림픽,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까지는 미국이 본고장 답게 연속으로 우승을 하여 독무대를 이루었으나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때부터 출전하여 결승에서 미국에게 계속 져서 2위만을 차지 했던 소련이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미국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한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1976년 캐나다의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다시 세계 정상을 차지하면서 농구의 본고장 답게 세계 최강을 과시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