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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얀굴뚝새243
뽀얀굴뚝새24323.08.15

오리무중은 어느 시대에 유래된 고사성어인가요?

우리가 어떤 실마리를 찾지 못할때 오리무중이라는

고사성어를 많이 씁니다. 어떤 해결책을 못찾아서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쓰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 고사성어의 유래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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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리무중 (五里霧中)은 깊은 안개 속에 들어서게 되면 동서남북도 가리지 못하고 길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무슨 일에 대하여 알 길이 없음을 일컫는 말입니다. 중국에서 환관과 황실의 외척이 세도를 부리던 후한 시대의 중엽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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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1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리무중은 사방 오 리를 덮은 안개 속이란 뜻으로, 사물의 행방 또는 사태의 추이를 전혀 알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후한의 순제 때 장해라는 선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조금 특이한 인물이었습니다. 학문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도술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었고, 벼슬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어 임금이 여러 번 사람을 보내어 등용하려고 해도 병을 핑계로 끝까지 출사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한평생이 결코 길지 않은데, 무엇하러 그 악다구니 속에 들어가 부대끼고 귀를 더럽히며 아까운 세월을 허비한단 말인가.”

    장해는 이렇게 말하며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특이한 삶을 살다 보니 명성은 상대적으로 높아져, 학문을 배우고자 찾아오는 젊은이가 줄을 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평소의 문하생만 해도 100명이 넘을 정도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학문을 좋아하거나 장해라는 인물에게 호기심을 느낀 선비들, 귀족과 조정 대신들, 심지어는 환관 나부랭이들까지 그를 만나고 유익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장해는 그것이 싫어서 화음산 밑에 있는 고향으로 낙향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를 따르려 하거나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벽촌까지 기를 쓰고 찾아가는 바람에 그의 집은 항상 잔칫날 같았고, 그의 이름을 딴 저잣거리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 극성스러움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장해는 마침내 화음산 속으로 잠적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다음 도술로써 자기 거처 주변 ‘사방 5리 정도를 안개로 덮어’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 안개를 ‘오리무라고 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가운데 중자를 덧붙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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