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초밥은 어떻게 탄생한 음식인가요?
식초로 간을 한 밥에 어패류를 얹은 일본식 요리. 일본에서는 '스시'라고 한다. 나라 시대에서부터 시작되어 헤이안 시대에 종류가 다양해졌고, 에도 시대 무렵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로 갖추게 되었다. 생선을 염장하거나 생선과 밥을 함께 쌓아 눌러 숙성시킨 나레즈시 계통과 식초를 사용해 밥에 간을 하는 하야즈시 계통으로 나뉜다. 오늘날 대부분의 스시는 하야즈시 계통이다.
스시는 산림지대에 살던 사람들이 생선을 저장하기 위해 도입한 음식이라는 설과 벼농사가 발달한 지역에서 쌀을 주식으로 하면서 탄생한 것이라는 설이 존재하지만 정확하게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기록이 없다. 다만, 생선 저장법이나 생선 요리가 발달한 동남아시아의 영향을 받아 일본의 스시가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며 나라 시대(奈良時代, 710~794)에 스시의 원형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나라 시대의 스시는 오늘날의 스시 형태인 니기리즈시가 아니었다. 당시의 스시는 소금에 절인 생선 사이에 밥을 넣어 무거운 돌로 눌러 두었다가 먹는, 일종의 절임류(침채류) 음식인 나레즈시(熱鮨, なれずし)였다. 절인 생선과 밥을 돌로 눌러두는 동안 유산발효가 진행되어 저장성이 높아지게 되므로 저장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오랫동안 보관해서 먹는 방식이었다.
나레즈시는 지금까지도 시가현(滋賀県)의 향토요리로 남아 있으며, 대표적인 예가 후나즈시(フナずし, 붕어 스시)이다. 후나즈시는 붕어의 형태가 손상되지 않도록 입을 통해 내장을 빼내어 소금에 절인 후 밥을 넣어 유산발효를 시킨 것으로, 삭은 밥은 덜어내고 생선만 먹는다. 후나즈시는 붕어 특유의 강한 냄새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11851333)부터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361573)에 걸쳐서는 나마나레(生なれ)라는 스시를 먹었다. 삭은 밥은 버리고 생선만 먹는 나레즈시와 달리, 나마나레는 발효 후에도 밥알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어 있어 생선과 밥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현재는 와카야마현(和歌山県)의 서북부 지역과 아리타(有田) 니코(日高) 지방에서 소금에 절인 고등어에 밥을 넣고 발효시킨 사바나레즈시(サバなれずし)가 전해지고 있다.
1500년대 이후에는 유산발효에 의한 신맛을 내는 대신, 밥과 생선에 직접 식초를 뿌려 신맛을 내는 하야즈시(早ずし)가 생겨났다. 이는 오사카(大阪) 스시의 원형이 되는 것으로서, 저민 생선을 밥 위에 얹고 누른다는 의미의 단어 ‘오스’(押す)로부터 오시즈시(押しずし)라고도 불렀다. 이렇게 스시가 밥과 함께 먹는 형태로 변화함에 따라 생선 외에 채소나 건재료 등을 스시의 재료로 사용하게 되었고, 이는 에도 시대의 요리로 널리 확산되었다.
오늘날의 니기리즈시는 하야즈시가 조금씩 변화하여 19세기 초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초창기에는 에도마에즈시(江戸前寿司)라 불렸다. 일본의 수도인 도쿄(東京)의 옛 명칭인 에도(江戸)라는 이름과 도쿄만 근해의 다른 표현인 에도마에(江戸前)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에도마에즈시는 도쿄왕(東京湾, 도쿄만) 근해에서 어획한 신선한 생선을 사용한 스시로서, 스시집(寿司屋) 혹은 야타이(屋台, 포장마차)에서 오늘날의 패스트푸드처럼 팔리던 요리였다.
니기리즈시는 도쿄의 전통요리에 지나지 않았으나 다이쇼 시대(大正時代, 1912~1926)의 대지진으로 인해 도쿄의 스시 장인들이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 정착하면서 에도마에즈시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식량난 해소를 위하여 음식점들의 영업이 일시적으로 금지되던 와중에도 스시집만은 쌀 1홉으로 스시 10개를 만드는 조건 하에 운영이 허락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 내에 스시 전문점이 급증했으며, 당시의 스시 크기가 오늘날 스시의 기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