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왕위를 이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없었지만 은근히 학식으로나 인품으로나 셋째인 충녕이 왕위를 잇기를 은근히 바라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태종은 왕자의 난으로 몸살을 앓았기 때문에 일찌감치 적장자인 양녕대군을 왕세자로 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세자가 되자 양녕은 기이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여색을 밝힌다든가 술에 빠져산다든가 하여 스스로 세자의 품위를 손상시켜 폐위되었으며 차남 효령대군은 스스로 중이 되어 왕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결국 정통성 시비없이 충녕대군(세종)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