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세습은 어떤 개념이었나요? 그리고 이를 통해 지배자 계층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조선시대 세습이 왕위 계승뿐만 아니라 관직승진과 지방세력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그당시 세습을 통해 지배자 계층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 아시는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초기에 세습은 큰 의미가 없고 큰 혼란 없이 정치에 큰영항이 없었지만 조선 후기에 가면서 세습이 지나친 부패로 백성들이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세습은 대표적으로 '음서'를 통해 정치적 세습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 왕의 경우도 자기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어 지배권을 세습했던 것입니다. 물론 조선시대의 경우 '과거' 역시 중요했기 때문에 양반의 자제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고위 관직에는 오를 수 없는 등 고려 문벌귀족 사회보다는 조금 더 '능력 중심' 사회였다 이렇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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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습은 국법으로 정해지기도 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관습으로 자리잡기도 하였습니다. 전자는 재산 상속이나 신분 및 권력의 세습, 또는 공장(工匠)의 장인의 세습과 같이 ≪경국대전≫ 등의 국법에 규정되어 있으며, 후자는 학문·기예·직업의 전수와 같이 집단의 문화적 규칙에 따라 행해졌다고 합니다.≪경국대전≫ 예전편(禮典篇) 노비토전사패식조(奴婢土田賜牌式條)에는 누구에게 공이 있어 종들 및 토지 몇 결(結)을 특별히 누구 누구에게 상을 주어 영구히 세전(世傳)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하는 는 교지가 있다고 합니다.이를 통해 왕이 특정 가문에서 노비와 토지를 세습할 수 있도록 법으로 인정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세전지재물(世傳之財物)’인 노비와 토지는 함부로 훼손할 수 없었으며, 만일 후손들이 이를 팔아먹을 경우,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토지와 인력등의 세습으로 인해 양반 귀족과 천민 계급은 대를 물려 세습이 가능 했고 이러한 세습 문화는 후일 조선 사회가 새로운 기술이나 문명을 빠르게 흡수 하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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