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나요?
대한제국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는 과정에서 여러 사건이 겹쳤는데요 그 중 하나가 김옥균 등이 일으킨 갑신정변입니다. 3일만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도주한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개화파의 정변은 3일 천하로 끝나고, 김옥균은 일본배를 타고 일본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조선 정부는 끊임없이 김옥균을 죽이려 했고,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일본도 그를 홀대해 오카사와라 섬에 강제 연금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1886년 고종에게 올린 편지에서 김옥균은, 청국과 일본은 모두 신용할 수 없는 나라로 조선은 결코 이들에게 의지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밖으로는 구미와 교제에 힘쓰면서 안으로 내정을 개혁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이미 조선 정부에게 그는 외국 군대를 이끌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대역죄인일 뿐이었죠.
1894년 김옥균은 마지막 승부수로 당시 청나라를 이끌고 있던 이홍장과의 담판을 위해 청으로 건너갔다가 조선에서 보낸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되당하고 맙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변이 실패하자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조선 정부에서는 김옥균을 암살하려 하였으며, 일본정부도 계속 그를 박해했다고합니다. 그는 토역사 이일식의 상해유인 공작에 걸려들어 이홍장과 담판하기 위하여 1894년 상해로 갔다가 이일식의 자객 홍종우의 흉탄에 맞아 44세의 나이로 쓰러지고 말았으며 그의 시체는 본국으로 옮겨져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었다고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갑신 정변이 3일 만에 끝나 실패 하자 김옥균은 1894년 일본으로 도피 하고 3월 중순 경 상하이에 도착한 김옥균 일행은 외국인 거주지 안에 있는 한 여관에 투숙하였는데 투숙한 다음 날 오후, 김옥균 일행은 거리를 구경하기로 하고 오전에는 각자 용무를 보다가 홍종우에의 총에 맞아 사망 한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44세 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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