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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소보로크림빵
단팥소보로크림빵23.11.26

고려때 현종을 황제로 세운 강조란 장수는 누구인가요?

고려대 무능한 황실을 바로세우고자 반란을 일으켜서 왕을 제거하고 황제를 현종으로 세운 장수인 깅조란 장수는 어떤인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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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조는 고려시대의 무장으로, 목종을 시해하고 현종을 왕위에 올린 인물입니다. 현종 즉위 후 중대사가 되었으며, 거란의 성종이 침입해오자 행영도통사가 되어 싸웠습니다. 그러나 거란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사로잡혔으며, 성종의 회유와 압력을 거절하고 살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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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는 938년 성종의 하급 궁료(下級 宮僚)로 천거 된 이후 991년에 무관(武官)으로 관직에 본격 진출하였으며, 997년 고려 제6대 군주인 성종이 후계를 이을 아들 없이 죽고, 묵종이 보위에 오르자, 이때 왕의 나이가 아직 18세임에도 불구하고 모후인 천추태후가 섭정을 하게 되고, 유배되었던 김치양도 다시 불려와 중용되었습니다. 김치양은 마음대로 정치를 하면서 1003년 천추태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목종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지요.

    이시기에 강조는 여러 관직을 거쳐 중추사 우상시로 있었으며 외직으로 나가 서북면도순검사가 되었습니다.

    정변 이후 거란족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을 때, 강조는 통주에서 30만의 군사로 거란군에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고 사로 잡혔습니다. 거란의 황제였던 성종은 강조의 인품을 보고 자신의 신하가 되어 권력을 누리자는 제안을 했으나, 강조 장군은 끝까지 제안을 거절하다 처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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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조는 황해도 신천 호족 출신의 고려시대 무신입니다. 그는 성종 때 궁료로 천거된 이후 991년 무관을 본격 출시하였습니다. 목종 당시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전횡 시기에 외직으로 나가 서북면도순검사가 되었습니다. 목종이 후계자 대량원군 순을 후계자를 선정하고 천추태후와 김치양으로부터 신변을 보호하게 하고자 강조를 수도로 불러들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로 돌아가던 중 목종이 위독한 틈을 타 김치양 등이 나라를 탈취했다는 풍문을 돌자 다시 개경으로 진군하여 목종을 폐위하고 대량원군을 왕으로 즉위시켰습니다.

    강조는 1009년 이부상서참지정사가 되어 권력을 장악합니다. 그러나 거란이 1010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성종이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로 쳐들어 오자 30만 군사로 맞서지만 패배하고 사로잡힙니다. 성종은 강조의 변절을 권유하나 거절하여 처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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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조는 강장자 가문 사람인 강태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강태주는 태조 왕건의 먼 외척으로 강호경과 강충, 강보전의 후손이었으나 가계가 불분명합니다.

    강조가 태어날 무렵 그의 일족 중 왕비가 나왔고, 태조 왕건은 자신의 먼 친척이기도 한 신천의 호족 강기주의 딸을 22번째 부인인 신주원부인으로 삼았는데, 강조는 신주원부인의 친정 일족이었습니다.

    983년 성종 임금의 하급 궁료로 천거된 이후 991년 무관으로 관직에 본격 출사, 997년 고려 제 6대 군주인 성종이 후계를 이을 아들이 없이 죽고 목종이 보위에 오르자 이때 왕의 나이가 아직 18세임에도 불구하고 모후인 천추태후가 섭정을 하게 됨에 따라 외척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앞서 천추태후와 추문을 일으켜 유배되었던 김치양도 다시 불려와 중용, 김치양은 마음대로 정치를 하면서 1003년 천추태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목종의 후계자로 삼으려 했는데 이때 그는 여러 관직을 거쳐 중추사 우상시로 있었으며 외직으로 나가 서북면도순검사가 됩니다.

    목종이 병석에 누워있으면서 김치양의 계획을 알고 황보유의를 파견해 대량원군 순을 맞아 오게 하고 또 전중감 이주정이 김치양에게 아부하는 것을 알고 임시로 그를 서북면 도순검부사로 임명해 보내면서 즉일로 다시 강조를 궐 내로 불러들여 숙위하도록 했습니다.

    목종은 대량원군 순을 후계자로 삼고, 궁궐 수비를 위해 중추사 우상시 겸 서북면 도순검사인 강조에게 개경의 궁월을 수비케 했고, 이때 세간에서는 목종이 위독한 틈에 김치양 등이 나라를 빼앗으려 하다는 풍문이 돌았고 왕이 죽었다는 헛소문이 전해지자 강조는 군사 5천명을 거느리고 오던 도중, 평주에서 왕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보고를 듣고 한때 주저했으나 부하 장수들과 회의 후 개경으로 가 목종을 퇴위시키고 대량원군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와 함께 김치양 부자를 죽이고 태후와 그 무리들을 귀양보냈으며, 양국공으로 폐했던 목종을 죽였습니다.

    이어 왕실의 부패를 척결하고 새로이 관제개혁을 실시, 국왕의 측근 보좌기구인 은대와 중추 남북원을 일시에 혁파하고 대신 중대성을 설치, 이때 중대사에 올랐으며 1009년 이부상서참지정사가 되어 당시 제일의 실력자가 됩니다.

    강조의 정변 이후 1010년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의 황제 성종은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 강조는 통주에서 30만의 군사로 거란군에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고 사로잡혔고, 장수 이현운과 함께 포로가 됩니다.

    거란의 황제였던 성종은 강조의 인품을 보고 자신의 신하가 되어 권력을 누리자는 제안을 하나 이현운 장군만 응하고 강조 장군은 끝까지 제안을 거절하다 처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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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조는 평양 서북면도순검사로 근무하던 중 고려 7 대 왕 목종의 부름을 받고 개경으로 50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들어오게 됩니다. 목종은 18세에 즉위하였으나 여전히 모후인 천추태후가 실권을 쥐고 있었고 목종이 20세에 후사없이 병석에 눕자 천추태후는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후계자로 삼으려 합니다. 이를 안 목종은 불교에 귀의해 불자가 되고자 한 대랑군을 궁으로 불러 후계자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강조는 군사를 이끌고 오던 중 왕이 죽었다는 헛소문을 듣게 되었으나 그대로 궁에로 진군을 하여 천추태후와 목종을 유배시키고 김치양과 그의 아들을 죽였으며 대랑군을 왕위에 앉히고 목종 또한 유배길에서 죽이게 됩니다. 이런 강조의 정변을 빌미로 거란은 2차 침입을 하였고 강조는 전쟁에 패하여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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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강조는 고려 초의 권신이자, 당대 고려의 높은 관직들을 두루 거친 사람이었는데 서북면도순검사(오늘 날의 지상작전사령관 또는 제2작전사령관)가 되어 국경을 지키다가 목종의 명으로 개경으로 오는 도중 반란을 결심해 현종을 왕으로 세우게 되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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