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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사랑하는나의우주
나를사랑하는나의우주24.01.10

고려시대때 왕후가 왜 그렇게 많았나요?


조선은 정식부인?? 왕비..?? 아 중전 중전이 나중에 황후나 왕후..? 호칭 받고 나머지는 다 후궁이잖아요.


고거전 현종만 봐도 왕후가 되게 많던데 고려시대때는 어떻게 그게 가능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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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사에서는 자주국일 때는 왕의 정실부인을 왕후로 불렀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전체적으로 조선만큼 내명부 체계가 엄격하지 않았으며, 원 간섭기부터는 체계에 혼란이 생겼습니다. 원 간섭기 이후부터 고려 왕의 정궁은 왕비로 격하되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와 청나라의 제후국이었으나 자주성을 암묵적으로 내세워 고려처럼 황제국 군주에게만 붙일 수 있는 ‘조/종’ 묘호를 임금의 사후에 올린 것처럼, 왕비(중전)에게도 사후 ‘왕후’라 격상 추존하는 형식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조선 왕비의 시호에는 왕비란 단어가 없고 왕후란 단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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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어 한 명의 남성이 여러 명의 여성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여러번 결혼하여 왕후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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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는 각 지역의 호족세력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국가였기 때문에 중앙집권적 체제가 약한 국가였습니다. 그렇기에 태조 왕건도 왕비만 6명에 후궁까지 29명이었습니다. 이는 고려시대 내내 이어져 내려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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