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때 왕후가 왜 그렇게 많았나요?
조선은 정식부인?? 왕비..?? 아 중전 중전이 나중에 황후나 왕후..? 호칭 받고 나머지는 다 후궁이잖아요.
고거전 현종만 봐도 왕후가 되게 많던데 고려시대때는 어떻게 그게 가능했었나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사에서는 자주국일 때는 왕의 정실부인을 왕후로 불렀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전체적으로 조선만큼 내명부 체계가 엄격하지 않았으며, 원 간섭기부터는 체계에 혼란이 생겼습니다. 원 간섭기 이후부터 고려 왕의 정궁은 왕비로 격하되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와 청나라의 제후국이었으나 자주성을 암묵적으로 내세워 고려처럼 황제국 군주에게만 붙일 수 있는 ‘조/종’ 묘호를 임금의 사후에 올린 것처럼, 왕비(중전)에게도 사후 ‘왕후’라 격상 추존하는 형식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조선 왕비의 시호에는 왕비란 단어가 없고 왕후란 단어가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어 한 명의 남성이 여러 명의 여성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여러번 결혼하여 왕후가 많았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는 각 지역의 호족세력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국가였기 때문에 중앙집권적 체제가 약한 국가였습니다. 그렇기에 태조 왕건도 왕비만 6명에 후궁까지 29명이었습니다. 이는 고려시대 내내 이어져 내려오게 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