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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한황조롱이89
세심한황조롱이8923.08.14

전기라는 것은 언제부터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전기는 우리 인간들에게 윤택한 삶을 하게 해주는 상당히 고마운 에너지인데요.

이 전기라는 것은 언제부터 누가 발견하여 사용하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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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 그리스 과학자 탈레스는 BC 600년경 호박을 모피에 문지르면 전하를 띠게 되어 가벼운 물체를 잡아 당기는 것을 보고 최초로 전기현상을 발견, 호박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인 엘렉트론에서 일렉트리시티라는 말이 유래되었습니다.

    16세기 말 영국의 윌리엄 길버트는 자석에 대한 연구로 호박이 지닌 인력과 자석의 인력과의 차이를 밝히고 1752년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은 연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번개의 전기적 성질을 증명, 프랑스의 물리학자 뒤페는 전하에 양과 음의 구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 프랑스의 토목공학자 쿨롱은 전하를 띤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력에 관한 쿨롱의 법칙을 발견합니다.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볼타는 볼타전지라 불리는 화학전지를 발명,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은 전자의 존재를 발견해 원자물리학의 발전에 공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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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기는 생각 보다 훨씬 일찍 발견되었습니다. 전기는 고대 그리스에서 발견되는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탈레스는 BC 600년경 호박이라는 보석을 통해 전기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탈레스는 우연히 호박을 모피에 문질렀고 이때 전하가 발생하며 물체를 끌어당기는 것을 보고 전기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전기의 영문표기인 ‘electricity' 역시 호박의 그리스어 ‘electron'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기는 사용 가능한 것은 아니고 그냥 존재 만을 안 것 인데요 . 1752년에는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이 연을 이용해 번개의 전기적 성향을 증명하기도 했으며, 프랑스의 물리학자 뒤페는 전하의 음과 양을 구별하는 발견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전기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연구됐으며, 마침내 1879년, 토머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며 전기가 비로소 우리 생활에서 사용되기 시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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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원전 550년경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베 조각을 호박에다 문질러 열을 내어 종이.실.새깃.털 등 가벼운 물건을 끌어당김으로써 전기의 원리를 발견했다.
    기원전 500년경에는 페르시아에서 역제가 시행됐다. 10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각종 기계의 설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5세기 중엽 독일의 구텐베르크는 활자인쇄기를 발명, 근대문명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으며 이어 1789년 철제인쇄기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18세기 후반에는 영국을 중심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늘어나는 수요를 따라잡기 위한 대량생산은 각종 기계의 발명으로 가능했다. 이 시기 와트에 의해 증기기관이 개량되어 모든 기계의 동력원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1833년에는 원시 컴퓨터랄 수 있는 순차제어식 계산기가 찰스 바베지에 의해 고안됐다. 19세기의 발명은 전신에서 시작됐다. 전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1837년 미국의 청년화가 모스가 특허를 출원한 전신기였다. 전신기는 전화 발명으로 이어지게 됐다.

    1837년 영국의 쿠크와 휘트스톤도 5개의 자침을 이용해서 알파벳을 전송하는 전신기를 창안해서 특허를 출원했다. 전화는 벨과 그레이에 의해 거의 동시에 발명되었다. 음성을 전기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한 벨은 연구에 들어가 1876년 2월에 특허를 신청했다.

    19세기에는 또한 전자기의 원리 발견도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먼저 정전기의 본질과 양적연구가 쿨롱에 의해 실시됐다. 암페어는 전류에 의해 자침이 움직이는 현상을 확장하여 전류상호작용의 원칙 등을 발견했고 볼타는 전지발명으로 휴대형 전원을 실현했다.

    옴은 전기학 체계를 확립했으며 패러디는 전자기 유도현상을 발견했다. 맥스웰은 전자기학 기초방정식을 정립했고 프랭클린은 연의 실험으로 번개가 전기라는 것을 입증해냈다. 1879년에는 에디슨에 의해 백열전구가 발명됐다. 에디슨은 이어 1891년까지 축음기.촬영기.영사기 등을 잇따라 발명함으로써 음성정보나 영상정보의 기록이 일반화됐다.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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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전기의 발견은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전 600년경, 탈레스는 호박을 문지르면 작은 물체가 달라붙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이 현상을 "정전기"라고 합니다.


    17세기에는 윌리엄 길버트가 전기의 본질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길버트는 전기가 물체의 속성이라고 주장했으며, 전기를 생성하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18세기에는 베네딕트 쿠퍼와 찰스 휘슬러가 전기의 전류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쿠퍼는 전류가 금속을 통해 흐르는 현상을 발견했으며, 휘슬러는 전류가 전선을 통해 흐르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19세기에는 앙드레-마리 앙페르와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기의 자기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앙페르는 전류가 자기장을 생성하는 현상을 발견했으며, 패러데이는 전류가 자기장을 이용하여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1879년에는 토머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했습니다. 백열전구는 전기를 이용하여 빛을 내는 장치로, 전기의 사용을 대중화시켰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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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초기의 문헌에 '전'이라고 명명된 것은 8세기경에 신라 김대문(金大問)이 썼다는 『고승전(高僧傳)』이 『삼국사기』 열전의 설총조에 전한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54 「앙엽기(盎葉記)」에도 김대문 저술의 『계림잡전(鷄林雜傳)』이 있었으나 전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실전한 것으로 ‘전’의 명칭이 보이는 문헌은 기행문 형식으로 된 혜초(慧超)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 최초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혜초가 천축국(天竺國)을 여행하면서 쓴 최초의 기행수필로 명칭만 ‘∼전’이라 하였을 뿐 서술방식도 일지(日誌) 형식으로 되어 있어 전기와는 거리가 멀다.


    현존하는 최초의 전기는 고승의 전이기는 하지만, 최치원(崔致遠)의 저술로 알려진 「당대천복사고사주번경대덕법장화상전(唐大薦福寺故寺主飜經大德法藏和尙傳)」이라고 하는 당나라 고승 현수(賢首)의 전기이다. 최치원은 이것 외에도 「의상전(義湘傳)」을 비롯한 몇 편의 고승전을 더 쓴 것으로 되어 있으나 제목만 전할 뿐이다.


    그런데 최치원의 현수에 대한 전기는 우리나라 전기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그는 이 전기의 도입부에서 전기의 서술방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고래로 전의 체는 같지 아니하여 혹 앞에다 그 이룬 것의 통서(統緖)를 세운 뒤에 원인이 되는 바를 포진(鋪陳)하거나, 혹은 서두에 성명을 표(標)하고 말미에 공렬(功烈)을 얽는다. 그러므로 태사공(太史公)은 매양 이제(夷齊)·맹가(孟軻) 같은 분을 대현(大賢)으로 삼아 전을 세우되, 반드시 들은 바로써 앞을 꾸미고 그런 뒤에 비로소 그 행사를 드러낸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덕행은 이미 빼어나고 보록(譜錄)은 마땅히 다를 수도 있어서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나는 비록 비속한 문재(文才)를 부끄러워하지만, 시험삼아 이를 모방하여본 것은 저 원종(圓宗)을 숭앙하므로 그의 가득찬 운수를 열서하여 이에 펴나간다.”(崔文昌侯全集).


    최치원보다 앞서 김대문의 『고승전』이 있었으므로 우리나라에서 전기의 형성은 최치원보다 훨씬 앞서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다만 이 시기에는 전기의 체가 서술자의 개성에 따라 다양하게 출현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 소론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열전의 효시로 간주되는 태사공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열전을 최치원이 모방하여 현수의 전기를 썼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이미 전기의 양식이 안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치원의 「현수전」은 후대에서 볼 수 없는 체로서 먼저 시간에 의한 일생을 포진하되 10과(十科)로 분과(分科)하였다. 제1과에서 제4과까지가 탄생부터 수도기(修道期)로 생애의 기록이고, 제5과에서 제9과까지는 현수의 저술과 이론을 소개한 것이다. 제10과는 현수의 죽음과 서술자의 논평으로 되어 있다.


    이 전기는 구성방식이 일반 전기와 비슷하나 이를 분과하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리고 서술자의 경험적 충동에 의한 보고적 제시로 되어 있어 제시된 삽화들의 필연적 구성이 약화되어 있고, 다만 입전 대상자의 열서된 행적을 통하여 인간상이 발견될 뿐이다.


    이상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전기는 이미 8세기에 김대문에 의하여 저술되었음이 문헌에 나타나고 있다. 현전하는 최초의 전기는 10세기에 최치원에 의하여 쓰여졌는데 이때는 벌써 전기의 체가 서술자의 개성에 따라 다양할 정도로 발전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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