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 시기 일본이 결혼 후 부인이 남편의 성을 따르는 제도를 채택한 것은 당시 서양의 근대적 법체계를 수용하며 사회제도를 빠르게 개혁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어요. 당시 일본은 근대국가로서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서구의 법률과 제도를 도입했는데, 가족법도 그 대상이었지요. 이 과정에서 서양의 가부장적 성씨 계승 관습을 채택하면서 단숨에 바뀌었지만, 그 배경에는 당시 서구 문명과 법체계를 모범으로 삼아 근대 국가를 빠르게 구축하려는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즉, 일본은 근대화를 위한 필수 과정으로 서구식 법률 체계와 사회질서를 수용한 것이고, 성씨 문제도 그 일환으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변화가 급격했던 만큼 개인의 전통이나 선택권보다는 국가적 방향과 체계 정립에 무게가 실린 시대적 상황이 크게 반영된 결과라고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