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가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싫어서 그가 한 여러 정책과 행동은 무엇인가요?
선조는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싫어한것은 실록등에서 다 알고있는 사실인데요.
그렇다면 그가 왕위를 주기 싫어서 본인이 한 정책들과 행동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선조는 광해군이 있었음에도 새로운 후궁으로부터 영창대군을 낳아 후계자로 삼고자 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광해군의 인기가 높아지자
선조는 명나라 장수를 접견할 때에 장자 임해군을 대동하고
그리고 영창대군을 낳아 세자를 바꾸려고 하는 등 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선조가 요동 망명을 고집하자 신료들의 건의에 따라 분조(分朝)를 결정하였다. 세자 광해군은 분조를 이끌고 수개월 동안 평안도 · 강원도 · 함경도 등지를 오가며 8도에 격문을 보내 의병을 독려하는 등, 국왕의 몽진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규합하는 데 공헌하였다. 또한 명나라 황제의 칙서에 따라 무군사(撫軍司)를 이끌며 야전을 누볐다. 이에 민심은 선조를 떠나 광해군에게 크게 쏠렸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선조는 광해군을 심하게 견제하였다. 명나라 장수를 접견하는 자리에 임해군을 동석시키는가 하면, 젊은 계비에게서 끝내 영창대군을 낳는 등 광해군의 세자 지위를 심각하게 흔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명나라 내부 사정으로 광해군의 세자 책봉 주청(奏請)은 무려 다섯 차례나 거절당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광해군은 어렵게 즉위하였다. 하지만 명나라는 국왕 책봉을 또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장자 임해군의 병세가 과연 사실인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차관을 파견하는 등 새 국왕 광해군에게 씻기 힘든 수모를 주었다. 결국 책봉을 받기는 하였으나, 장자도 적자도 아니라는 출생 신분은 광해군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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