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 민국이 신탁 통치를 받게 된것은 6.25이후가 아니라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황실도 없었고 정부도 없었고 36년간의 식민지 지배를 당한 후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두고 연합국은 카이로, 얄타, 포츠담 회담 등을 연쇄적으로 개최했음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기 전에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대한 전후 처리문제에 대하여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결국 연합국의 전후 처리문제에 대한 합의는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국, 영국, 소련 간의 3국 외상회의에서 결정되었는데 이 회담에서 3개국은 한국에 임시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이 정부와 연합국이 협의하여 최장 5년 간의 신탁통치를 실시할 수 있다는 결정서에 합의했다고 합니다. 2차대전 내내 연합국 간에 합의가 실패한 이유는 30년 간의 신탁통치를 주장한 미국의 제안에 소련과 영국이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