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 측 문헌에는 645년 당군이 고구려를 침공하여 10개의 성을 빼앗고 4만 명 이상을 전사시킨 반면 당군의 전사자는 2,000명에 불과했다며 대전과를 거둔 것처럼 기록되어 있으나, 태종이 안시성에서 퇴각한 지 3일 만에 황급히 요수를 건넌 것이나 철군 후 고구려 침공을 몹시 후회했던 점으로 미루어, 당의 타격은 기록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막대한 것이었으리라 추측된다.
이 같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휘자의 이름이 『삼국사기』 등의 안시성전투에 관한 기본사료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이래의 야사에는 양만춘(梁萬春 또는 楊滿春)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이 싸움에서 당 태종은 눈에 화살을 맞았다는 이야기가 고려 후기의 문헌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여당전쟁
[네이버 지식백과] 안시성전투 [安市城戰鬪]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