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에 유학하여 관직 생활을 하게 된 대표적인 이가 바로 최치원 입니다. 6두품 출신으로서 12세의 나이로 당에 유학하여 6년 만에 당의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절도사 고병의 막하에서 <토황소겨군>(討黃巢檄文)》을 지어 당 전역에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승무랑 시어사(承務郞侍御史)로서 희종 황제로부터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았다고 합니다. 귀국하여 헌강왕으로부터 중용되어 왕실이 후원한 불교 사찰 및 선종 승려의 비문을 짓고 외교 문서의 작성도 맡았으며, 시무 10여 조를 올려 아찬 관등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골 귀족들이 득세하며 지방에서 도적들이 발호하는 현실 앞에서 자신의 이상을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여 행방불명되었다고 하는데 사국 사기에서는 가야산의 해인사로 들어갔다고 하고, 민담에서는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고도 합니다. 908년까지 생존해 있었음은 확실하지만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