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와 온조는 고주몽의 소생인가요? 아니면 소서노와 결혼 전 이미 소서노의 아들로 존재하고 있었나요?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궁금한 점이 많이 생깁니다. 동명왕인 고주몽에게는 유리, 비류, 온조 이렇게 세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유리가 다음 왕이 되잖아요. 소서노는 그래서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가 나라를 다시 세우는데요. 비류와 온조는 고주몽의 소생이 맞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온조는 졸본부여 왕의 차녀가 추모와 결혼하여 낳은 차남으로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나와있고, 북부여 왕 해부루의 서손인 우태가 졸본 사람인 연타발의 딸 소서노와 결혼해 낳은 둘째 아들이라는 것인데 이후 우태는 먼저 죽고 소서노는 과부로 살다 추모와 재혼합니다.
첫번째의 경우 온조왕은 고구려 게통에 주몽의 3남으로 위로는 이복형인 유리와 친형 비류가 있었다고하며 이에 따르면 백제 부여씨왕가는 고구려 고씨 왕가의 방계가 됩니다.
두번째는 부여 해씨 왕가와 친연관계가 있을 뿐 고구려 고씨 왕가와 친연관계가 없으며 동명성왕은 주몽의 어머니 소서노의 재혼으로 잠깐 온조의 새아버지였다가 곧 헤어진 사람이 됩니다.
삼국유사에서도 고전기라는 사서를 인용해 추모의 셋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비류의 기록은 백제 본기 0년에 온조의 건국과 함께 등장하는데 건국 상황을 묘사한 2개의 기록이 차이를 보입니다.
온조 시조설로는 아버지는 동명성왕 고주몽이고 어머니는 종본부여왕의 세 딸 중 1명
비류 시조설로는 아버지는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인 우태이며 어머니는 연타발의 딸 소서노이며, 나중에 과부가 된 소서노를 동명성왕 고추모가 아내로 맞아 비류와 온조 형제도 친아들처럼 대했으나 역시 유리명왕 고유류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되자 어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남하해 백제의 시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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