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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한테리어2
세심한테리어223.11.23

아기들이 탄생하고 난후 1년때에 하는 돌잔치의 유래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아기들이 탄생하고 난후 1년째에 되는 해에 돌잔치를 하는데 언제부터 돌잔치를 시작햇는지 유래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그리고 돌잔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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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1.23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돌잔치의 유래가 궁금하군요.

    아무래도 백일잔치, 돌잔치는 의학이 발달되지 못한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돌잔치(문화어: 돐잔치)는 유아가 태어나고 1년이 되었을때, 만 1세가 되면 축하하는 의식으로, 유아의 앞날이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한국의 풍습입니다.

    과거에는 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돌을 못 넘기고 죽는 아기가 많았습니다. 첫 생일을 무사히 넘긴 것을 기념하고 아기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잔치를 여는 것이 돌잔치의 기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돌잔치의 '돌'은 열두 달을 한 바퀴 돌았다는 뜻이다. 또한 돌잔치에서 돌잡이를 함으로써 아기의 장래와 관련하여 미래를 점쳐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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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한 후 1년 째 되는 해에 돌잔치를 하는 이유는 옛날에는 아기가 태어나고 1년도 채 되지않아서 병으로 죽게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년을 무사히 넘겼음을 축하하고,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서 돌잔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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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진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 래


    아기가 태어난 집은 금줄이라고 하여 남아일 경우에는 고추·짚·숯을, 여아일 경우 짚·숯·종이 또는 솔잎을 왼새끼로 꼬아 대문에 달고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막았다.

    태어난 아기를 위한 의례는 여러가지가 있어, 먼저 태어난 지 7일째 되는 날을 '한이레' 또는 '첫이레'라고 했다. 이때는 쌀깃(강보라고도 함)을 벗기고 깃 없는 옷을 입히며 움직이지 못하게 동여맸던 팔 하나를 풀어 놓았다. 그 뒤 다시 일주일이 지나면 깃 있는 옷에 두렁이를 입히고 나머지 팔 하나를 풀어 놓았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면 비로소 아래위의 옷을 맞추어 입히고, 그 동안의 금기가 풀리면서 금줄을 거두고 이웃이나 친척들이 아기를 구경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세이레가 지난 다음 아기에게 가장 큰 의례는 역시 백일이다.

    의학적 지식이 부족하고 계절(季節)마다 현저한 기온의 변화와 알지못하는 병으로 인하여 영유아의 사망률이 대단히 높았던 옛날에는 백일안에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하나의 생명체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을 축하하는 행사가 곧 백일이다. 백일에는 친척과 이웃 등 손님들을 초대해 성대하게 접대하였고, 손님들은 명(목숨)이 길라고 실이나 옷을 가져와 축하해 주었다.

    다음으로 큰 의례는 아기가 태어난 지 1주년 되는 날인 돌이다. 이제야 비로서 가족의 한 성원으로 인정을 하는 돌잔치는 예부터 관습처럼 행해지는 축하행사로, 왕실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멀고 가까운 친척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이고 손님들은 여러가지 선물을 가져와 아기의 장래가 잘되기를 축하해 주었다. 이날에는 '돌떡'이라하여 백설기나 수수팥떡을 만들어서 손님은 물론 이웃에게도 돌리는데, 많은 사람이 나눠먹어야 아기에게 좋다고 여겼으며, 떡을 받은 집에서는 빈 접시를 보내지 않고 실, 의복, 돈, 반지 등의 선물을 접시에 담아 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돌에 대한 행사는 중국·일본에서도 고대부터 있어 왔으며 한국에는 『국조보감(國朝寶鑑)』정조15년 6월조에 궁중에서 돌잔치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수광의『지봉유설(芝峰類設)』인사부(人事部) 생산편(生産篇)에는 중국의 『안씨가훈(顔氏家訓)』을 인용하여 한국의 돌잔치 풍습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또한 경축행사로서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행하여진 것으로 알려진다

    의 미


    아이가 태어난 지 만1년이 되는 첫 생일을 돌이라고 한다.

    돌은 유아기 때 아기 나이를 셈하는 단위로 첫돌, 두 돌, 세 돌.. 등으로 쓰이기 한다.

    돌은 초도일(初度日) 또는 수일(磎日)이라고도 하며, 돌잔치는 예로부터 행해져 오는 경축행사로, 의학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대에 1년을 고비로 인생에 있어서 첫 고비를 넘긴 재생의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아이를 적게 낳아 정성들여 키우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다시 돌잔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돌이란 아이가 1년 24절기를 처음으로 한바퀴 돌았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말. 부모라면 누구나 건강하게 자란 내 아이를 친지들과 더불어 축하하고픈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하지만 요즘 신세대 부모들은 어른들과 떨어져 살기 때문에 돌잔치를 어떻게 할지 막막하고, 맞벌이 등으로 시간에 쫓기느라 충분한 준비없이 친지를 초대했다가 예상치 않은 실수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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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과거 출산 시 신생아의 사망률이 매우 높았고 많은 질병에 노출되어 첫 돌을 넘기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아기가 첫 돌까지 살아있다는 것을 큰 고비를 넘긴것으로 생각해 돌잔치는 이를 축하하고 무병장수를 바라는 행사에서 유래,

    돌잔치는 왕족은 물론 서민에 이르도록 널리 행해진 풍습이었습니다.

    과거 주년을 가리킬때 돐이 표준어였고,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를 돌잔치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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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돌잔치와 돌잡이는 조선왕조실록의 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래된 우리나라의 전통인데요. 옛날에는 질병이 많고 유아의 사망률도 높았기 때문에 아기가 돌을 맞는다는 것은 성장의 초기과정에서 한 고비를 넘겼다는 의미를 지니며, 이를 축하하는 것이 관습으로 이어져 왔기에 적어도 정확하게 언제 인지는 모르지만 조선 시대에도 돌잔치는 존재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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