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장군은 부모님을 일찍여의고 삼수로 이동해 포수생활과 광산 일을 하던중 일제 총포류회수에 반대하여 삼수갑산 포수들과 함께 일제에 저항하여 싸우다가 봉오동 독립군지대에서 일본군 159명 사망 중상 400명 경상 200의 대승을 이끈 독립군 사령관입니다. 그러나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독립군부대가 일제에 쫓겨 소련의 자유시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만주파와 러시아 연해주파 등의 갈등으로 독립군 1500여명이 붉은군대와 반대파들에 의해 죽음을 당함으로써 독립군들이 궤멸되는 수준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항일무장투쟁을 함께한 동지들을 죽이는데 홍장군이 개입되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흉상철거와 육사명예졸업장 회수 등을 계획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입니다. 홍장군은 이후 주로 러시아에서 생활하다가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땅으로 옮겼고 노후에 고려극장 수위로 생활하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당시 러시아는 연합군의 일원으로 일제와 대립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