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힘찬하늘소177
힘찬하늘소17723.08.21

호레이쇼 넬슨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일명 넬슨 제독이라고도 불리는 호레이쇼 넬슨은 나폴레옹을 상대로 승리한 몇 안되는 지휘관 중 하나라고 하는데요.


호레이쇼 넬슨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758년 9월 29일 영국 잉글랜드 동부 노퍽 북부 버넘소프에서 출생, 아버지 에드먼드는 목사였고 어머니 캐서린 서클링은 영국 초대 총리를 역임한 로버트 월폴 경의 외사촌 조카 손녀입니다. 월폴 가는 먼 친척이었지만 넬슨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의 이름 호레이쇼는 로버트 경 아들의 이름에서 따 온것.

    특히 넬슨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외삼촌 모리스 서클링으로 모리스는 영국 해군 대령으로 서인도제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해 명성이 높았던 인물입니다.

    1771년 모리스 서클링의 추천으로 해군에 입대, 템즈 강을 운항하는 수송선 경비함에 배속되어 해군 장교가 되기 위한 기초적인 항해술을 익혔고 173년 북극항해단에 참가해 전함 카커스의 키잡이로 북극을 다녀왔고 1777년 장교로 임관, 윌리엄 로커 함장이 이끄는 프리깃함에 승선해 영국 상선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으나 멕시코 인도양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영국으로 송환되어 고향에서 요양하며 건강을 회복합니다.

    1780년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 1782년 프리깃함 HMS 보레아스의 함장이 되었고 카리브해에서 영국 상선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1792년 넬슨은 전함 아가멤논을 이끌고 프랑스혁명 전쟁에 종군해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싸웠습니다.1794년 코르시카섬 점령에 공을 세우나 오른쪽 눈을 잃었으며 1797년 세인트 빈센트 해전에서도 수훈을 세웠으나 오른쪽 팔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당시 최강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함대에 대적해 영국함대를 이끌어가는 지휘관으로 임무를 수행, 1789년 나일강 입구의 아부키르만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해 나일강의 남작이라 불렸습니다.

    나폴리 체재 중 알게된 해밀턴 부인과의 친교로 일시 군무를 포기하고 귀국, 1801년부터 다시 해상에 나갔고 발트함대를 구성해 코펜하겐 전투에서 승리, 같은해 자작이 되었으며 1803년부터 지중해 함대 사령관으로 대서양으로 진출하려는 프랑스 함대를 견제, 1805년 봉쇄한 풀롱 항에서 탈출한 프랑스 함대를 추격해 그 해 10월 21일 트라팔가르 해협에서 프랑스 -에스파냐 연합 함대를 포착, 대담한 분단작전으로 이를 격멸시켰으나 완승 직전 프랑스 수병의 저격을 받아 , 하느님께 감사한다.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다했다 라는 최후의 말을 남기고 기함 HMS 빅토리 호에서 전사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758년 노포크의 버넘에서 출생했다. 1770년 12세의 나이로 해군에 입대하여 외삼촌 서클링의 도움으로 빠르게 승진했다. 1780년 영국 해군 부관의 직위로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한 후, 프랑스의 혁명전쟁에 종군하여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싸웠다. 1794년에는 코르시카섬 점령에 공을 세웠으나 오른쪽 눈을 잃었으며, 1797년 빈센트 곶 해전에서는 부상을 당하여 오른팔을 잃게 된다. 그는 '나는 끝났다.'고 기록하는 등 절망하나 그에 굴하지 않고 1798년 나일 해전에서는 인도로 진출하려던 나폴레옹의 프랑스 함대를 격파하여 '나일의 넬슨 남작(Baron Nelson of the Nile)'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일부 사학자들은 이를 트라팔가 해전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한다.

    프랑스군의 침공으로부터 나폴리 왕가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영국대사의 아내 엠마 해밀턴과 사랑에 빠져 후에 혼외로 딸 허레이시아를 낳는다.


    1801년 청색 부제독 직에 올랐으며, 같은 해 프랑스와 아미앵 휴전 협정(Peace of Amiens)이 맺어져 퇴역하고 버밍햄에 머무른다. 그러나 곧 전선에 복귀하여 1803년부터는 지중해 총사령관의 임무를 맡고 HMS 빅토리호를 받아 프랑스 툴롱(Toulon)항구 봉쇄에 참가한다. 1805년 그는 프랑스-에스파냐 연합 함대를 격멸하기 위하여 출항하여 같은 해 트라팔가르 해전에 참가한다. 33척의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 함대에 그는 27척의 배를 끌고 맞선다.

    빅토리호는 르두타블(Refdoutable)호와 뒤엉켰고 그로 인해 완승 직전에 적의 저격을 받았다. 탄환은 폐를 관통하여 척추에 박혔으나 그는 그 상태로 네 시간 동안 지휘를 계속한 후 영국이 승리한 후에야 숨을 거두었다. 그는 최후에 '내 의무를 다할 수 있게 해준 신에게 감사한다(Thank God I have done my duty).'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몸에 박혔던 탄환은 현재 윈저 성에 전시되어 있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이후 성 바울 성당에 안치되었다.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는 넬슨 기둥이 서 있으며, 그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그를 기념하는 비와 조각은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넬슨 터치(The Nelson Touch)'라고 불릴 정도로 부하들을 고무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그를 군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령관 중 한 명으로 남게끔 했다. 2005년 BBC의 설문조사 결과에서 그는 영국을 빛낸 위인들 중 10위 안에 들었으며, 많은 영국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출처 : 시사상식사전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호레이쇼 넬슨(사진)은 19세기 전 세계적으로 최강 영국 해군을 창건한 인물로 역사상 가장 영향력 큰 제독으로 우뚝 솟아 있습니다. 넬슨은 역사상 지금까지 해전의 으뜸가는 영웅으로 해전의 대명사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는 용맹스럽고 끈질긴 군인기질을 가진 해군제독으로 항상 부하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넬슨은 지금까지 영국해군이 모방하고 있는 해군의 행동기준과 전통을 최초로 확립해 놓았습니다. 승리의 순간 전사한 그의 영전에 영국 최고의 훈장인 가터 킹 오브 암스 훈장이 바쳐졌습니다. 왕은 넬슨 제독을 승리의 순간에 조국을 위해 순국한 영웅이라고 칭송하면서 그의 전사를 몹시 슬퍼했습니다.

    넬슨은 1758년 9월29일 영국 노포크 번햄 토프에서 탄생, 불과 열두 살 해군에 입대할 때까지 성직자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스무 살 때 영국 프리깃함 함장에 기용됨으로써 영국 해군사상 최연소 함장 기록을 세웠다. 그는 10년간 대부분 서인도 제도에서 근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