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309년 ~ 1378년, 교황청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이전했던 시기를 아비뇽 유수라 하는데 '유수(幽囚)'는 '잡아 가둠'이라는 의미로, 교황이 사실상 한지에 유폐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바빌로니아에 의해 유대 왕국이 사라지고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붙여진 이름이다.
1376년 그레고리오 11세가 로마로 돌아가서 2년 후인 1378년에 사망하고 새 교황이 로마에서 선출되면서 막을 내렸지만, 프랑스 왕국이 이에 불복하여 아비뇽에 또다른 교황을 선출하면서 1418년까지 40년간 서방교회 대분열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교황청의 입지는 추락했고, 교황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위클리프파, 후스파, 공의회수위설 등이 득세했다. 교황은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세속군주화되었다. 또한 이 사건으로 아비뇽은 신성 로마 제국에서 교황령으로 이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