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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큰고니27
밝은큰고니2723.12.26

신라시대에 만들었다고 알려진 삼대목이 등장하는 문헌은 무엇인가요?

신라 진성여왕 때 각간 위홍 등이 편찬했다고 알려진 삼대목에는 많은 수의 향가가 수록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이 되는데요. 이 삼대목이 등장하는 문헌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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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시다시피 삼대목은 향가가 모아져 있는 최초의 가집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책 자체가 전해지는 않아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는 알수가 없습니다. 삼대 라는 말이 신라의 시대구분은 상, 중, 하로 나눠 시기별로 유행했던 향가를 모아놓았을 걸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 삼대목이 언급되어 있는 문헌은 제가 알기로 삼국 사기(진성왕 2년,888년)에만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답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대목은 신라 진성여왕 2년(888) 각간 위홍이 대구화상(大矩和尙)과 함께 편찬했다고 알려진 한국 최고(最古)의 향가집으로, 현재는 소실되어 전하지 않으며, 삼국사기 진성여왕 본기에 그런 가집이 편찬되었다는 기록만 남아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대목(三代目)은 신라 후기 진성여왕 2년(888년), 각간 위홍이 대구화상(大矩和尙)과 함께 편찬했다는 한국 최고(最古)의 향가집이다. 현재는 소실되어 전하지 않고, 『삼국사기』 진성여왕 본기에 삼대목이란 가집이 편찬되었다는 기록만 전해진다.

    "신라 시대의 향가를 3등분하여 상대, 중대, 하대로 분류해 삼대목이라 한다."는 설이 있으나, 편찬 당시에는 신라가 존속했으므로 그러한 구분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고려 김부식 대에 와서야 '삼대목'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고 처음 편찬했을 때부터 삼대목이라 하였기(운云) 때문에 그러한 구분은 너무 미래 시점에서 생각했다는 지적이 있다. 자기 나라를 곧 망할 나라로 보아 '하대'라는 명칭을 썼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상대, 중대, 하대가 아닌 성골 시대, 무열왕계 진골 시대, 내물왕계 진골 시대 등으로 구분했을 가능성도 있다. 삼대목의 뜻과 관련된 다양한 주장

    삼대목에 어떤 향가가 실려 있었는지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짓도록 명한 승려 대구화상은 삼국유사의 다른 기록에서도 등장하는데, 대구화상은 요원랑 등 여러 화랑들의 부탁을 받아 경문왕을 칭송하는 향가를 지은 적이 있다. 이 노래 제목은 현금포곡(玄琴抱曲), 대도곡(大道曲), 문군곡(問群曲)이었는데 이 노래들의 내용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 중 문군곡의 문군(問群)은 '무리에게 묻는다.'는 뜻이므로, 이 음악은 국왕과 백성 간의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음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대구화상이 삼대목을 편찬한 만큼 저 세 노래는 분명히 수록되었을 것이다. 또 경문왕은 화랑 출신이고, 향가 중에는 모죽지랑가나 찬기파랑가처럼 화랑을 칭송하는 노래가 있다.

    이를 통해 삼대목의 편찬 목적이 경문왕부터 진성여왕까지 이어지는 경문왕가 신성화 작업, 왕권 강화의 일환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즉 훗날 조선에서 용비어천가를 지은 것과 같은 목적. 이렇게 보면 단순히 문화적 동기로 향가를 수집한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하대 왕권을 다잡아보기 위한 정치적 행동이었던 셈이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삼대목> (三代目)은 < 삼국사기>에 이름만 전하는 심라 시대에 편찬된 한국 최초의 향가집인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진성여왕 2년(888년)에 王索與角干魏弘通 至是常入內用事 仍命與大矩和尙 修集鄕歌 謂之三代目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로써 진성 여왕의 명을 받아 각간 벼슬에 있던 이홍과 승려 대구화상이 향가집 편찬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