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한반도 전역이 강제 합병당했단 치욕으로 떨고 있었으며
일본은 그걸 알아서 경찰보다 헌병이 더 많을 정도로
엄청나게 엄격하게 단체행동을 금지 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경제가 더 나아졌다면 모를까 경제적으로도 최악이었으니
지식인 부터 농민까지 모두가 일본을 싫어했죠
그러다 광무황제, 그러니까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이 사망했는데
일본쪽이 그 사실을 제때 알리지 않으면서 고종 독살설이 떠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종의 장례식인 3월 3일에 운동을 할 예정이었지만
장례식 당일에 소란을 일으키는 것은 불경하다는 의견에 더해
2일은 일요일이라 기독교측이 반대해서
1일로 정해진 것 입니다,
그리고 3.1에 서울 서 일어난 운동이, 장례식을 위해 여행온 여러 사람을 통해 퍼지면서 전국적으로 몇달동안 시위가 일어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