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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가오리188
즐거운가오리18824.02.08

조선 성종의 정실인 중전 윤씨는 왜 성종 8년차 폐비논의가 있었나요?

연산군의 어머니이자 성종의 정실이었던

중전 윤씨는 성종 8년차 폐비논의가 있었고

성종 10년차 실제 폐비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1차 폐비논의가 있었던 사건은 무엇이었나요?

어떤 사건으로 인해 폐비가 논의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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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473년 성종이 조선의 왕으로 있을 때 폐비윤씨는 후궁으로 간택되어 성종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1476년 폐비윤씨는 왕비로 책봉이 됩니다. 하지만 폐비윤씨는 왕비가 되고나서 질투가 심해 조선의 왕비로서 부덕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1477년 비상을 숨겨 왕과 왕의 후궁을 독살하려 한 혐의로 왕비에서 빈으로 강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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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종의 계비이고 연산군의 어머니는 부도덕한 행위로 인해 폐위되고 사약을 받아 죽습니다. 1차 폐비 논의는 1477년(성종 8년) 윤씨가 성종의 얼굴에 손톱 자국을 낸 일로 인해 성종과 그의 어머니 인수대비의 분노를 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윤씨는 연산군의 어머니이기도 하고 하여 대간들의 반대가 있어 포기하게 됩니다. 결국 성종은 윤씨를 폐위하지 못하고 나인 삼월을 처형하고 사비를 장 100대를 쳐 변방의 관비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1479년(성종 9년) 성종은 윤씨를 폐출하기로 결심하고 대신들을 소집하여 중궁 폐출의 교지를 내려 폐위하였습니다. 그리고 1482년 명을 내려 윤씨를 사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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