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의 정실인 중전 윤씨는 왜 성종 8년차 폐비논의가 있었나요?
연산군의 어머니이자 성종의 정실이었던
중전 윤씨는 성종 8년차 폐비논의가 있었고
성종 10년차 실제 폐비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1차 폐비논의가 있었던 사건은 무엇이었나요?
어떤 사건으로 인해 폐비가 논의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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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473년 성종이 조선의 왕으로 있을 때 폐비윤씨는 후궁으로 간택되어 성종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1476년 폐비윤씨는 왕비로 책봉이 됩니다. 하지만 폐비윤씨는 왕비가 되고나서 질투가 심해 조선의 왕비로서 부덕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1477년 비상을 숨겨 왕과 왕의 후궁을 독살하려 한 혐의로 왕비에서 빈으로 강등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종의 계비이고 연산군의 어머니는 부도덕한 행위로 인해 폐위되고 사약을 받아 죽습니다. 1차 폐비 논의는 1477년(성종 8년) 윤씨가 성종의 얼굴에 손톱 자국을 낸 일로 인해 성종과 그의 어머니 인수대비의 분노를 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윤씨는 연산군의 어머니이기도 하고 하여 대간들의 반대가 있어 포기하게 됩니다. 결국 성종은 윤씨를 폐위하지 못하고 나인 삼월을 처형하고 사비를 장 100대를 쳐 변방의 관비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1479년(성종 9년) 성종은 윤씨를 폐출하기로 결심하고 대신들을 소집하여 중궁 폐출의 교지를 내려 폐위하였습니다. 그리고 1482년 명을 내려 윤씨를 사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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