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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양241
빼어난양24123.10.30

공민왕당시 요동정벌을 할수 있던 배경이 무엇인가요?

공민왕당시 독립을 벗어난지 얼마 안된 혼란의 시기일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동을 공격할수 있던 배경은 뭣이엇는지 즉 명나라 여진등이 있음에도 그 이유와 배경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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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명 교체기에 명나라는 요동도지휘사사를 두어 요동을 포함한 만주 공략을 꾀하였고 이 과정에서 원나라는 국력이 약해져 고려는 1356년(공민왕 5년)에 철령을 넘어 쌍성총관부를 수복할수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는 1369년 부터 명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어왔는데 우왕 때의 친원정책 이후 명나라는 무리한 세공을 요구하고 고려사신의 입국을 거절하는 등 고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88년 철령 이북의 고려영토를 원나라 영토였다는 이유로 반환하라 요구, 명나라와의 실력대결을 준비하게 됩니다.

    요동은 남만주 요하의 동쪽 지방으로 1360~70년대 초 고려는 이 지역의 원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이곳에 살던 고려인들에게까지 통치 영역을 넓히고자 세 차례 출정해 일정한 성과를 거둔 바 있었고 원나라 멸망 후 명나라는 이곳에 요동 도지휘사사를 두어 만주 경략을 꾀함으로 고려와 여러 알력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에 고려정부는 요동지방을 공격해 명의 압력을 배제하려 하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중도에 그치고 맙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요동정벌은 우왕 때 이루어졌으며, 당시 원나라가 거의 몰락하고 명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림으로써 실제로 이 요동정벌은 이루어지지 못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