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당시 요동정벌을 할수 있던 배경이 무엇인가요?
공민왕당시 독립을 벗어난지 얼마 안된 혼란의 시기일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동을 공격할수 있던 배경은 뭣이엇는지 즉 명나라 여진등이 있음에도 그 이유와 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명 교체기에 명나라는 요동도지휘사사를 두어 요동을 포함한 만주 공략을 꾀하였고 이 과정에서 원나라는 국력이 약해져 고려는 1356년(공민왕 5년)에 철령을 넘어 쌍성총관부를 수복할수있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는 1369년 부터 명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어왔는데 우왕 때의 친원정책 이후 명나라는 무리한 세공을 요구하고 고려사신의 입국을 거절하는 등 고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88년 철령 이북의 고려영토를 원나라 영토였다는 이유로 반환하라 요구, 명나라와의 실력대결을 준비하게 됩니다.
요동은 남만주 요하의 동쪽 지방으로 1360~70년대 초 고려는 이 지역의 원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이곳에 살던 고려인들에게까지 통치 영역을 넓히고자 세 차례 출정해 일정한 성과를 거둔 바 있었고 원나라 멸망 후 명나라는 이곳에 요동 도지휘사사를 두어 만주 경략을 꾀함으로 고려와 여러 알력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에 고려정부는 요동지방을 공격해 명의 압력을 배제하려 하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중도에 그치고 맙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요동정벌은 우왕 때 이루어졌으며, 당시 원나라가 거의 몰락하고 명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림으로써 실제로 이 요동정벌은 이루어지지 못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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