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을사조약 최종 서명을 하였는데요.왜 친일파가 아닌가요
고종은 일본의 협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최종 을사조약을 체결하였고. 결과적으로는 일본 황실에 호의호식하고 살았다고 하던데요. 그때 고종이 서명을 하지 않는 방법은 없었을까요. 만약 서명을 하지않았다면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까요. 왜 이완용만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라고 하고. 고종은 친일파가라 하지 않는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그렇습니다 고종은 일본의 협박에 의해서 을사조약에 서명을 했지만 명성황후와 함께 일본을 우리나라에서 내쫓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다 명성황후가 살해 당하는 비극도 맛보았고 안중근에게 이등박문을 죽이라는 밀명도 내렸다고 하니 친일파가 아니지요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을사조약에 고종은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어전 회의에서 참정 대신 한규설과 탁지부 대신 민영기는 반대했지만, 법부 대신 이하영은 소극적 반대, 학부 대신 이완용과 군부 대신 이근택, 내부 대신 이지용, 외부 대신 박제순, 농상공부 대신 권중현이 찬성 했습니다. 그리고 국새와 외무대신의 관인은 훔쳐서 날인했다고 알려져 있고 고종도 그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을사조약 이후 고종은 호의호식 하지 않았습니다. 을사조약 이후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를 당했고 훗날 독살 당하게 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을사조약에 고종의 서명은 없어 늑약이라고 보통 부릅니다. 박제순과 일본 전권공사 하야시 사이에 체결하였고 이 조약 체결에 찬성한 다섯 장관 즉 대신을 을사오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고종은 미국에 이 조약이 무효이며 찬성하지 않았다는 것을 헐버트를 통해 친서를 보냈습니다. 1907년 헤이그 특사에서도 을사조약이 무효이며, 강압적으로 맺어 외교권 박탈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리고 이 과정에서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한 이준 열사는 자결하게 되었습니다.
이 헤이그 특사를 빌미로 일본의 강요로 고종은 강제로 퇴위당하고 순종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고종을 친일의 행적을 보였다는 것은 무리한 이야기로 오히려 고종은 국권을 지키기 위한 갖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고종이 1919년 승하했을 때 고종이 일본의 독살로 그리되었다는 풍문이 돌았고 민족적 감정이 격앙되어 거국적인 3.1운동이 일어난 사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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