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을사조약에 고종의 서명은 없어 늑약이라고 보통 부릅니다. 박제순과 일본 전권공사 하야시 사이에 체결하였고 이 조약 체결에 찬성한 다섯 장관 즉 대신을 을사오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고종은 미국에 이 조약이 무효이며 찬성하지 않았다는 것을 헐버트를 통해 친서를 보냈습니다. 1907년 헤이그 특사에서도 을사조약이 무효이며, 강압적으로 맺어 외교권 박탈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리고 이 과정에서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한 이준 열사는 자결하게 되었습니다.
이 헤이그 특사를 빌미로 일본의 강요로 고종은 강제로 퇴위당하고 순종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고종을 친일의 행적을 보였다는 것은 무리한 이야기로 오히려 고종은 국권을 지키기 위한 갖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고종이 1919년 승하했을 때 고종이 일본의 독살로 그리되었다는 풍문이 돌았고 민족적 감정이 격앙되어 거국적인 3.1운동이 일어난 사례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