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발해의 가장 큰 적은 거란이었습니다. 거란은 당의 멸망 이후 중원의 분열 속에 요동 지역으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915년 10월에는 야율아보기가 직접 압록강에서 낚시를 하고, 신라는 거란에 방물을 바치고 태봉은 고려 보검을 바치는 등 발해의 신경을 자극하는 일들이 발생하였습니다. 발해는 신라와의 결원을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소득은 없었습니다. 거란은 급속히 강해지고 있었고, 신라, 태봉 및 그 뒤를 이은 고려는 거란과의 교류를 행하고 있었던 까닭에, 발해 역시 918년 2월 거란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920년 발해인 4명이 일본으로 망명하는 등 서서히 발해 내부에서 분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또한 발해의 영향 아래 있던 여진이나 흑수, 달고 등이 이탈하여 독자적으로 신라나 고려, 중원과 접촉하는 등 발해의 주변 민족에 대한 통제력도 상당히 약화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