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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angel
Youangel23.10.10

안익태 선생의 친일행적에 대해서

안녕하세요? 애국가의 원작자로 유명한 안익태 선생님은 친일행적도 있어서 비판받고 있는것으로 아는데요 어떠한 친일행적인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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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익태가 유럽으로 건너간 이후 1938~1944년까지의 행적이 논란이 되고있습니다.

    에키타이 안이라는 이름은 안익태가 일본식 이름으로 활동한 것으로 친일 행적으로 꼬집는 사항이며, 일본의 궁중 음악 에텐라쿠를 바탕으로 한 같은 이름의 관현악 환상곡을 작곡, 이는 적당히 손질해 나중에 내놓은 한국의 아악을 바탕으로 만든것이라는 주장, 황기 2600주년 기념 봉축곡까지 관련, 1941년 명치절을 기념해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연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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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익태는 세계 2차대전 발발 이후에 친일 활동을 시작합니다. 친일 친나치 활동을 했는데, 1944년 히틀러의 생일 기념으로 일본의 동맹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만 30차례 공연을 지휘했습니다. 도 일본 축전곡도 작곡해서 연주했습니다.

    나치독일에서 당시 조선인으로는 유일하게 제국음악원 회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회원증을 보면 출생지가 도쿄(원래는 평양)로 적혀 있습니다.

    음악적으로 성공하겠다는 출세욕이 높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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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0.1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친일 행적은 논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안 에키타이(서양식 이름: 에키타이 안(Ekitai Ahn))라는 일본어 이름을 사용했을 정도로 친일 행적을 시작했다는 주장이 광복회 일부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안익태 후손은 '에키타이'는 일본 이름이 아니고 '익태'라는 한국 이름을 영어나 기타 외국어로 표현할 때 일제시대 당시 관행에 따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며, 이것은 성과 이름을 한자부터 일본식 이름(4글자)으로 고치는 창씨개명과는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일제시대 당시 조선인이 외국을 나갈 때 필요한 여권을 발급하는 기관이 일제 총독부였기 때문에, 여권을 발급받아 해외에서 활동한 조선인의 경우 이름의 영문 표기가 일본식 발음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며 이를 친일 행적의 증거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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