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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류왕과 대립은 당과 외교 정책의 차이에서 시작합니다. 당은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팽창 정책을 추진한 당나라에 대해 영류왕을 비롯한 귀족들은 굴욕적인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습니다. 영류왕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수나라 포로 군사 1만 명을 당나라의 요구에 송환했고, 왕세자를 당에 보내 조공울 받치기도 헀습니다.
그러나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이라는 세계관, 그리고 30여 년 전 수나라의 침략을 물리친 자부심을 가진 대당 강강경파 연개소문을 비롯한 고구려의 무장 세력들은 영류왕의 대당 정책에 반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