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장웅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연산군은 성종의 승하와 함께 왕위에 올랐죠. 즉위 직후부터 삼사와 많은 사안에서 충돌하자 숙청을 하는데 이것이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배경이 됩니다. 무오사화 이후 강력해진 왕권을 바탕으로 사치와 사냥을 즐겼고 경연을 없애 학문도 마다하였습니다. 문신들의 직간 또한 귀찮게 여겨 사간원을 폐지하기도 했고. 후에는 언문학대까지 자행했는데 결국 1506년 중종반정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는 과장에서 갈등을 빚은 영창대군을 1613년 대북파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서인으로 삼았고 5년 후인 11618년에는 이이첨 등의 폐모론에 따라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켰습니다. 이러한 정치 행위로 서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폐위를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조반정에 의해 폐위되기 전까지 대동법과 양전을 실시하고,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한성부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창덕궁을 중건, 경덕궁과 인경궁을 준공하는 등 궁궐 조성에 힘썼습니다.
연산군과 이 부분이 조금은 대비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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