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광해군 대는 선조 대의 논의가 실천으로 첫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즉 시범 시행으로 이는 시행처인 경기 지방의 백성들에게는 도움이 되었으나 방납의 폐단을 완전히 뿌리 뽑지는 못했으며 시행 초 반발이 많았고, 여러 진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광해군은 처음 경기선혜법 시행에도 어디까지나 수동적으로 동의, 그 뒤 이 법을 유지하는데 회의적이었습니다.
광해군 원년 봄, 선혜법 두 번째 실시를 앞뒀을 때 광해군은 송나라 왕안석의 개혁책인 신법도 처음 좋은 의도로 시작했으나 결국 커다란 재앙이 되었다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으며 다음해에는 완전히 폐지하려 했습니다.
이원익은 선혜법에 대해 말하며 1년은 실시하고 판단하자 설득, 공물변통의 논의가 시작되자 그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 일어나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공물작미를 전국적으로 실시하려던 계획은 경기 지역으로 축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