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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때까치29
굳센때까치29

우리 조선에도 마약(아편)이 들어왔나요?

과거 가까운 나라 중국은 마약 때문에 영국과 아편전쟁을 치를만큼 큰 위기를 겪었잖아요. 혹시 우리나라에도 그런 아편이 들어와서 문제를 일으켰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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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석연 신한대 교수는 농가에서 가정상비약이던 아편이 마약으로 취급받게 되는 과정을 풀어냅니다. 조선에서 아편의 폐해는 ‘헌종실록’ 헌종 6년(1840년)에 등장했다고 합니다.
    청나라에 간 사신이 당시 청국이 혼란스러운 원인을 서양인들이 들여온 아편 때문이라고 보고하면서 마약으로서 아편의 문제점이 부각됐습니다.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아편 문제는 심각해졌는데, 조 교수는 ‘당시 관리들이 가진 아편에 대한 관대한 인식이 원인이다’고 지적했습니다. 전통사회에서 양귀비 재배와 아편 채취가 일상이었고, 가정상비약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물론 밀수하는 인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선 일본이랑 청나라에 더 관심을 가지기도 했고

    청나라에서 사건사고들이 터지는 동안 아편이 어떤 물건인지 이해하고 정책을 세울 시간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개항하기 전은 물론 개항한 후에도 아편만은 막아내러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1890년대에 이미 아편유포는 징역5~3년 짜리 범죄였으며

    1905년에는 아예 징역15년짜리 중범죄로 개정했죠.

    하지만 마약이란게 워낙 중독적인 물건이라 각사등록, 횡성신문 등

    당시 기록물에 마약관련 범죄가 많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참고논문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803440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아편이 들어왔었습니다. 세종실록의 지리지에서도 아편의 재료인 양귀비 재배에 대한 기록도 있고 하였습니다. 아편을 흡연해 피해가 발생하는 모습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40년 헌종 6년 3월 25일 ‘헌종실록’ 기록에서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