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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찬밀잠자리170
대찬밀잠자리17023.06.16

조선시대에 호랑이관련 설화가 많은 이유가 뭔가요?

조선시대 문학작품을 보면 호랑이에게 물려가거나 호랑이랑 같이 이야기를 하거나 호랑이관련된 설화가 많던데 왜 유독 호랑이관련된 이야기가 많은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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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설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첫번째는 고려의 태조 왕건(王建)과 관련된 설화에서와 같이 신령하고 신통한 능력을 지닌 영물로서 표현되는 경우이다. 왕건이 젊은 시절 사냥을 나갔다가 폭우를 피하여 동굴 속에서 친구들과 머무르고 있을 때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굴 입구에 나타나 으르렁거리며 잡아먹으려 하였다.


    친구들과 의논하여 웃옷을 던진 뒤 두 개의 물어올리는 옷의 주인이 희생을 당하기로 하였는데, 두 개의 왕건의 옷을 물어올려서 약속대로 굴 밖으로 나가니, 그 순간 굴이 무너져 간발의 차이로 살아나게 되었으며, 호랑이는 자취를 감추고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김현의 설화에서와 같이 두 개의 자유자재로 인간으로 변신하여 인간과 교유한다는 내용이다.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던 김현은 한 소녀를 만났는데 이 소녀는 두 개의 변신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소녀를 따라 호랑이굴로 들어가게 되어 소녀의 형제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 된 것을 소녀의 기지로 목숨을 건지게 되고, 형제호랑이의 살생에 대한 천벌이 멀지 않음을 감지한 소녀가 김현의 손에 죽음을 당하여 형제를 살리고 김현에게 공을 돌렸다는 내용이다.


    세번째는 인간의 행위에 감동된 두 개의 인간을 도와주는 경우, 또는 인간에게 도움을 받고 그 은혜를 갚는 경우이다. 이상의 유형이 호랑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경우라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호랑이와 토끼의 설화는 호랑이의 어리석음을 희화적(戱畵的)으로 표현한 유형에 속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꾀 많은 토끼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 되었다. 토끼는 꾀를 내어 먹을 것이 많은 곳을 가르쳐 줄 테니 잡아먹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어리석고 욕심이 많은 호랑이는 토끼를 따라 강변에 가서 꼬리를 물에 담그고 많은 물고기가 잡히기를 기다린다. 점점 물이 얼기 시작하여 꼬리가 무거워지는 것도 모르고 더 많은 물고기가 달리기를 기다리다 결국 물이 얼어붙어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이상의 설화에 나오는 호랑이상을 살펴보면,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무섭고 두려운 맹수이지만 우리 생활에 밀접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동물로서 여겨왔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어리석고 의뭉스러울지라도 결코 간교하지 않은, 오히려 우직함이 돋보이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하겠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대중문화 가운데 민화는 민중을 동화시키는 가장 소박하고 파격적이며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친근한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민화 가운데서도 까지, 호랑이 그림은 너그럽고도 영검스러워 민족의 특성과 역사와 현실 속에서 우리 마음 속에 깊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인과 호랑이의 관계는 단군신화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고구려 고분벽화의 청용백호도의 용호사상과, 민족 고유 신앙인 산신령의 사자인 호랑이는 신격화되어 숭상되었으며, 역사나 설화 속에서 항상 의로운 동물로 기록되어 있다.
    호랑이가 백수의 장으로 맹수의 무서움 보다는, 때로는 교훈적이며 때로는 동양의 장자다운 늠름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위엄있는 시골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모습으로 민화나 공예품에서 생활화된 호랑이는 우리들에게 매우 자연스럽고 편안한 존재이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산군님이라고 부르며

    영엄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고

    더 옛날에는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도 존재했을 정도입니다.


  •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호랑이의 여러 민담 속 모습은, 무시무시한 힘을 지니고 있으나 바보같기도 하며 영특한 동물(특히 토끼나 다람쥐와 같은 작은 동물)이나 똑똑한 아이들, 혹은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역으로 당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혹은, 부패를 저지르는 정치인들을 향한 일종의 천벌로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밤중에 아이가 한참을 울다가 부모가 곶감을 주겠다고 하자 울음을 그쳤는데, 단순히 맛있는 간식인 곶감을 좋아하기 때문에 울음을 그친 것이지만 호랑이는 곶감이 자신보다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하여 도망을 가는 민담이 존재하며,[14] 지나가던 선비가 구덩이에 떨어진 호랑이를 구했더니 잡아먹겠다고 협박하였고 선비는 자신이 무슨 잘못이 있는지에 대해 재판을 열게 되는데, 여러 자연물들이 인간은 자연을 이용함에도 감사함을 모른다며 지나가던 선비를 잡아먹으라고 호랑이의 편을 들지만, 지나가던 토끼가 어떻게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알려 달라고 하며 호랑이를 다시 구덩이에 집어넣은 후 선비와 함께 도망가는 이야기에서도 호랑이가 바보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15]


    더불어 호랑이는 바보같은 모습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호랑이를 만났는데, 나무꾼이 무릎을 꿇고 울며 호랑이에게 반갑다고 말하며 그 호랑이의 전생이 나무꾼의 죽은 형이라고 속여서 나무꾼의 아픈 어머니도 형을 기다린다고 하며 호랑이로부터 고기를 받아 먹었다는 이야기 역시 한국에서 매우 유명한 민담이다. 이는 조선 시대 당시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사상 중 하나인 효를 지키자는 교훈을 호랑이에 빗댈 정도로 호랑이가 친숙한 동물이었다는 것을 반증하며 산짐승조차 효를 중시한다는 내용으로 효를 지키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풍자하는 민담이라고 전해진다.[16]


    반면 호랑이는 마치 한 마리의 괴물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소금장수와 기름장수는 각각 다른 지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엄청나게 거대한 호랑이가 서울에서 나타나 기름 장수를 삼켰고, 먼 거리를 뛰어가서 경상도에서 소금장수를 삼켰다. 거대한 호랑이는 잠에 빠졌고, 소금장수와 기름장수는 호랑이의 배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기지를 발휘하였는데 호랑이의 고기를 뜯어 구워 먹자고 하여 기름장수가 불을 붙이고 소금장수가 호랑이의 몸 안에서 소금을 뿌렸다. 호랑이는 매우 고통스러워하며 내장에 불이 붙어 죽게 되었고, 소금장수와 기름장수는 호랑이의 배를 갈라 탈출 하였으나, 그들이 있던 곳은 또 다른 지방인 전라도였다는 이야기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