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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발발이142
로맨틱한발발이14223.09.01

서대문형무소가 독립 운동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서울에있는 서대문형무소가 독립 운동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주변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형무소로 잡혀가고, 이후 자극을 받게 되어 독립운동 발전, 국제사회의 인식 변화 등에 기여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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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02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88년 2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부지는 19만 8348㎡, 연건축면적은 2만 6446㎡이다. 수감 가능인원은 3,200명(1987년 경기 의왕시로 이전 당시)이다. 1907년 시텐노가즈마[四天王數馬]의 설계로 착공, 다음 해 문을 연 후 80년 동안 약 35만 명을 수감, 숱한 민족의 수난사를 잉태하였다.


    준공 당시는 감방 480평, 청사 80평의 규모였으나, 1916년 7, 8옥사 및 여사(女舍), 1923년 13옥사와 사형장, 1925년에 중앙사 및 10, 11, 12 옥사, 1934년에 1~6옥사 및 부속 옥사를 증축하여 확장하였다. 청사는 전동(典洞)에 있던 흥사단 건물을 이축(移築)한 것으로, 6·25전쟁 휴전 직후 현재의 자리로 다시 옮겨 관사(官舍)로 사용하였다.

    건축물은 군집형태로 묶여져 있고, 이 중 붉은 담벽·감시탑·출입문·구치감·감방(남사·여사·외국인사)·사형장·일반사무실(보안과·순화교육대)·교회당·공장·창고·취사당·식당·세면장(목욕탕 등)·운동장 등으로 되어 있다. 지붕은 함석이고, 주위 벽은 판자 위에 아연판을 두른 목조이며, 2층 옥사는 감시하기 좋게 T자형 부채꼴로 설계하고, 감방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게 되어 있으며, 복도 천장을 뚫어 철망 사이로 위층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이 구치소의 뿌리는 구한말의 전옥서(典獄署)로서, 1904년 경무청감옥서(警務廳監獄署)로 바뀌고, 1908년 현저동에 경성감옥(京城監獄)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1912년 서대문감옥, 1923년 서대문형무소, 1946년 경성형무소, 1950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등의 명칭을 거쳐 1967년 7월 7일 서울구치소로 개칭되었고, 1987년 경기 의왕시로 옥사를 이전한 이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주로 민족지도자와 독립운동가, 4·19혁명 이후 1980년대까지는 정치인·기업인·세도가·군장성·재야인사·운동권 학생 등과 이 밖에 살인·강도 등의 흉악범과 대형 경제사범·간첩·잡범 등 다양한 범법자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이곳에는 3·1운동 때 유관순 열사가 갇혔던 지하 여자감옥, 윤봉길 의사가 복역중 만들었다는 붉은 벽돌, 강우규 의사가 처형당한 사형장, 여러 독립투사들이 투옥되었던 1평 남짓한 좁은 감옥들이 남아 있다.


    1988년 서울시는 이곳을 민족의 수난과 독립운동의 역사교육 현장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구한말의 독립관을 복원하고, 공원을 조성하여 '서대문독립공원'으로 불렀는데, 1995년 '독립공원 사적지 성역화' 계획을 마련, 독립관 복원 공사에 착수한데 이어 구치소의 제9~13옥사·중앙사·나병사·지하옥사 등 8천여 평과 담장 일부·망루 2곳을 원형대로 되살려 1996년 유료공원화하기로 하였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에 있다.

    출처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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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대한제국 말기에 세운뒤 1987년 까지 운영되었던 형무소 입니다.일제 강점기에는 독립 운동가들이,해방 이후에는 민주화 운동가들이 이곳에 갇혀 온갓 고문으로 고통을 받았던 곳입니다.장소:서울 마포구 공덕동 시기:한일 강제 병합 이후 1910년 영향: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과 총독 사이토를 공격한 강우규도 이곳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형무소때문에 어떠한 영향을 받은건 잘모르겠네요. 모진 고문과 핍박이 있던곳이라 가기 두려워하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독립운동을한 독립운동가들은 정말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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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는 독립운동가를 수용할 감옥을 지었는데 기존 감옥과는 다른 ‘근대식 감옥’. 그렇게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10월,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에는 식민 지배에 맞섰던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가 갇혔으며, 해방 후에는 독재 정권과 군사 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운동가가 투옥됐지요. 하지만 서대문 형무소가 독립운동에 직접적으로 기여 한 바는 없으며 다만 후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1992년 8월, 자주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대문독립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했고 이에 2007년 4월부터 공원 재조성 사업이 시작됐고, 2009년 10월 다시 개원했다고 합니다. 특히 재개원 때는 112년 동안 접근이 제한됐던 독립문을 시민들에게 돌려줌으로써 ‘독립공원’의 의미는 살아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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