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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때까치29
굳센때까치2923.06.04

서대문 형무소에 잡힌 사람은 모두 독립운동가들이었나요?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우리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독립운동가분들을 잡아서 서대문 형무소에 가뒀다는데요. 그곳에 잡혀가신 분들은 모두 독립운동가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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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0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19년에는 3·1운동으로 인해 수감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당시 시위관련자 1,600여 명을 포함해 3,000여 명이 수용되었다. 특히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유관순(柳寬順, 1902∼1920) 등이 독립선언과 독립만세운동으로 인해 이곳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밖에도 일제강점기에 양한묵·강우규·안창호·여운형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된 곳이었다.

    일제는 표면적으로는 재소자에 대해 정해진 작업, 정량의 식료품 배급, 교육과 운동에 대한 교정 규정을 가졌다. 그러나 실제로 형무소에 투옥된 독립운동가에게는 형기가 확정되기 전부터 온갖 취조와 고문이 자행되었다. 또한 옥사 내에는 겨울철에 난방이 되지 않아 동상을 입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며 동사(凍死)하는 일도 빈번했다. 여름철에는 각종 전염병으로 병사자가 속출하는 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처우가 가혹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정치·사회문제로 관련하여 간첩 및 사상범이 많이 투옥되었다. 특히 운동권학생과 재야인사 등이 투옥되어 민주화운동의 성지(聖地)로 이해되기도 한다. 함석헌(咸錫憲)·유달영(柳達永) 등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대문형무소


  •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시기 서대문형수소에 수감된 명단의 기록이 정확히 전해진거너 아닙니다. 하지만 서대문 형무소에 갇히게 된 모든 사람들이 독립운동가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강점기 시절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곳이라고 알려져있는데요. 모든 수감자가 독립운동가였던 것은 아니며, 당시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에 따라 친일파로 알려지게 된 죄인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기록이 있습니다. 이승만 정부 치하에서는 정치인들이 수감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수감된 일부 인물들의 업적과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 통감부가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운동가들을 투옥하기 위해 1907년에 오늘날의 서대문구 지역에 건설하여 1908년 10월에 문을 연 감옥을 가리키는 말인데 일제 시대에는 대부분이 독립 운동가 혹은 시국 사범이였고 해방 후에는 주로 서울 구치소라 불리며 많은 정치범들및 시국 사범들이 수감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