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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angel
Youangel23.10.30

흥선대원군은 어떻게 정권을 잡았는지요?

안녕하세요? 흥선대원군은 직전왕의 직속인 후계자가 아나리고 알고 있습니다. 근데 어떤 경위로 정권을 잡게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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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철종이 후사 없이 죽자 결정권을 가지고 있던 조대비와 밀계가 있어 자신의 차남인 명복을 익종의 양자로 삼아 익성군으로 봉하고 익종의 양자 자격으로 즉위시킨 뒤 자신은 대원군이 되어 정책 결정권을 부여받습니다.

    1864년 1월 16일 아들인 고종이 즉위하자 조대비가 수렴청정을 하나 곧 흥선대원군에게 고종을 보필하라며 형식상으로 수렴청정을 행하니 이때부터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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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종법상 철종 다음의 왕이 나올만한 집안이 흥선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집안이었습니다.


    남연군의 아들 흥완군ᆞ흥인군에게 아들들이 있었으나 너무 어리거나 이미 관례를 마친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흥선군의 둘째 이명복이 대상이 된 겁니다. 그래야만 익종 비 신정왕후 조씨가 수렴청정을 할 수 있거든요.


    따라서 흥선대원군의 등장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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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첫째, 안동 김씨의 왕족 견제에 대해 흥선대원군은 보신책으로 스스로 파락호 또는 궁도령라고 조롱거리가 되어 안동김씨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는 철종이 왕자가 없었으며, 아버지 남연군이 비록 정조의 동생 은신군의 아들로 입적하지만 당시 흥선군은 종친 가운데 가장 가까운 범주에 해당하는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째 철종이 후사 없이 병약해지자 효명세장의 비인 조대비에게 접근하여 둘째아들 명복(고종)을 후계자로 삼을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조대비는 안동 김씨에게 빼앗긴 세도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라 여겨 흥선군과 교감할 수 있었습니다. 1863년 철종이 죽고 조대비의 양자로 고종이 즉위하자 대원군에 봉해지고 어린 고종의 섭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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