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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안동 김씨의 왕족 견제에 대해 흥선대원군은 보신책으로 스스로 파락호 또는 궁도령라고 조롱거리가 되어 안동김씨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는 철종이 왕자가 없었으며, 아버지 남연군이 비록 정조의 동생 은신군의 아들로 입적하지만 당시 흥선군은 종친 가운데 가장 가까운 범주에 해당하는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째 철종이 후사 없이 병약해지자 효명세장의 비인 조대비에게 접근하여 둘째아들 명복(고종)을 후계자로 삼을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조대비는 안동 김씨에게 빼앗긴 세도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라 여겨 흥선군과 교감할 수 있었습니다. 1863년 철종이 죽고 조대비의 양자로 고종이 즉위하자 대원군에 봉해지고 어린 고종의 섭정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