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덕수궁은 1907년 고종의 퇴위 전까지는 '경운궁'으로 불렸다. 아관파천 사건(명성황후 시해 이후 고종이 일본군을 피해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긴 사건) 이후 고종이 경운궁을 거처로 선택하면서 크게 확장됐다. 돌담길 역시 경운궁의 확장과 함께 길어지고 넓어졌다. 당시에는 경운궁 돌담길이었던 셈이다.
이 경운궁 안에는 왕의 승은을 입지 못한 후궁들이 모여살던 처소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처소로 인해 죽은 후궁들의 한이 남아 연인들의 사이를 갈라놓는다는 미신이 생긴 것이 '돌담길 속설'의 최초인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경운궁의 쇠락과 더불어 돌담길도 축소됐다. 이때 덕수궁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영성문 고갯길'이 생겼다. 그리고 비로소 '돌담장'도 쌓아올려 지금의 운치 있는 모습이 됐다.
영성문 고갯길은 당시 '사랑의 언덕길'로 불렸다. 길의 양옆에 돌담이 세워져 있어 나름대로 비밀스러운 공간이 연출됐다고 한다. 1950년대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에는 당시 돌담길의 모습이 이렇게 기록돼 있다.
출처: wikitree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진짜 헤어질까?' 시민에게 직접 물어봤다 https://www.wikitree.co.kr/articles/258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