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삼정의 문란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요?
조선시대 후기가 되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혼란스럽게 급변하는데요.
그 가운데 조선시대에 가장 큰 문제는 삼정의 문란이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문제가 일어나게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정의 문란은 조선 재정의 주류를 이루던 전정(田政)·군정(軍政)·환정 세가지 수취체제가 변질되어 부정부패로 나타난 현상으로 관리들의 수탈과 부정부패로 인하여 생긴 것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정은 공정하고 정확한 전지의 조사와 측량을 바탕으로 1년에 소출되는 양을 검사해 균등한 전세를 부과하는 제도인데 전지에 대한 조사가 20년에 한번씩 이뤄지도록 규정되었으나 이것이 지켜지지 않았고, 소출량에 대한 조사도 담당자인 수령과 토호들의 농간에 의해 공정한 세금 부과가 어려웠습니다.
이런것들이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심화, 그 유형으로 실제 소유하지 않은 토지에 세금을 징수하는것, 실제 세액의 몇배를 착복하도록 한 것, 각종 부당한 명목의 잡세 등이 있었습니다.
군정은 군적에 따라 번상병을 뽑고 보포를 정급하여 주는 제도이나 15세기 말부터 군포를 내고 군역을 면제받는 관례가 생긴 후 임진왜란 후 직업군인이 생기고 군에 가지 않는 대상자들은 군포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수취제도가 변질, 대다수 돈있는 백성들은 군포를 내고 군대에 가지 않았으나 점차 군포가 부담되자 향교의 교생, 서원의 원생, 향직, 향안에 등재, 공명첩 등의 방법으로 군포를 면제 받는 방법이 등장합니다.
이에 군포가 줄자 지방 관아에서는 이웃에게 군포를 강제 징수하는 인징, 가족에게 강제징수하는 족징, 마을단위로 전체의 군포액수를 부담케하는 동징, 어린 아이에게까지 군포를 징수하는 황구첨정, 이미 죽은자의 이름으로 군포를 징수하는 백골징포 등이 성행합니다.
환정은 춘궁기 농민에게 식량과 씨앗을 빌려주고 추수 후 돌려받아 농업의 재생산을 도모하고 군자미를 매년 새로운 곡식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었으나 빌려준 곡식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자연적으로 소모되는 곡식이 증가, 모곡이라 하여 1/10을 이자로 더 받게 됩니다.
이후 국가 재정이 어려워지고 아전들의 횡포가 늘면서 모곡의 양이 1/10에서 1/2로 늘어났고, 원곡에 모래나 겨를 섞어 실제 양을 줄이고 후에 거두는 모곡은 원곡대로 돌려 받는 등 다양한 편법이 자행됩니다.
이에 환곡 받기를 거부하는 백성에게도 강제로 배부, 이자를 돈으로 내도록 해 아전들이 부당한 이익을 취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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