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예는 기록에 따르면 신라 왕족 출신이라고 합니다. 또는 몰락한 진골의 후예라고도 하죠. 그러면서도 불가에 입문하여 승려라는 배경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반신라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으며, 미륵신앙에 기반하여 하층민들의 지지를 받아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성장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고, 궁예는 지금의 평양 주변에 자리잡던 패서 호족들과 제휴합니다. 그들의 군사ᆞ경제적 이점을 이용하여 후고구려를 건국하였습니다.
그런데 궁예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는 나라를 세운지 얼마되지 않아 수도를 송악에서 철원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나라의 이름도 마진, 태봉으로 바꿨지요. 이는 궁예가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의 강화를 꾀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고구려 계승이라는 정체성을 무시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궁예는 자신의 권력에 한계가 있음을 느꼈고, 그리하여 종교의 힘을 빌려 자신을 돋보이려 했습니다. 자신을 미륵부처라 칭하고, 미륵관심법을 거론하며 신하들을 핍박한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궁예는 자신의 부인과 두 아들마저 호족 세력과 연결되었다는 생각에 죽여버립니다. 호족들은 궁예의 폭정에 언제 목숨을 잃을 지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힙니다.
마침내 시중 왕건과 4명의 기장들을 중심으로 정변이 발생하여 궁예는 쫓겨났고 고려가 건국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