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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그 존재만으로도 백성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피란민은 전쟁터인 명량까지 이순신을 따라 갔습니다. 보통 피란민들은 전쟁터에서 멀리 도망가는데 반대 현상인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에서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에 다시 임명되었을 때 도망갔던 군사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9명의 군관밖에 없었으나 이순신이 지나가는 고을마다 군사들이 늘어납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크게 승리했지만 전사했습니다. 이에 대한 좌의정 한음 이덕형(1561~1613)이 임금 선조에게 보낸 보고서의 일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다. “노량해전의 승전 보고가 있던 날 군량을 운반하던 인부들이 이순신의 전사 소식을 듣고 무지한 노약자들마저 눈물을 흘리며 서로 조문까지 하였으니 이처럼 사람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와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부하들의 믿음이 두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