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상 통일 제국 중 최단명 제국이자 독자적인 시대로 구분되지 못하는 유일한 제국으로 고작 1대 15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졌으며 10년도 가지 못한 서초의 항우 조차 사마천에 의해 정통한 천하 종주의 계보인 본기에 기록되고 초한쟁패기 자체가 하나의 시대로 인정받는것과 크게 상반되는 부분으로 진라라의 통일전쟁과 초한전쟁으로 황폐화가 된 중원을 복구시키고 발전한 전한의 황금기를 끝내고 다시 군웅할거로 전환시켜 결국 세조 광무제에 의해 내전이 끝날 때 까지 경제와 산업 상태를 최악으로 만든 제국입니다.
신나라는 전한시대의 나쁜 점을 고쳐보려 개혁을 실시하지만 모두 실패하며 민심을 잃었고 결국 왕망이 부하에게 살해됨으로 신나라는 세워진지 15년 만에 끝이 나게 됩니다.
무제가 죽은 후 대외 원정에 따른 재정의 어려움으로 실시한 통제 경제에 대한 반발로 당쟁이 발생하고, 외척과 환관의 권력 투쟁으로 쇠퇴한 한(전한)은 외척 왕망에게 멸망하였습니다.
왕망은 신을 세우고(8년) 토지의 국유화(왕전제), 노비 매매의 금지한 개혁을 시행하였으나, 호족들의 반발로 무너졌습니다. 왕망의 <주례>를 바탕으로 주나라를 이상 시대로 여겨 토지 공유 제도 등 현실을 무시한 개혁 추진하였습니다. 결국 호족들이 유수(광무제)를 세워 후한을 세우면서 신은 17년 만에 멸망합니다.(25년)